3월 23일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서쪽 크로커스 시청 주변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공연장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이 외신 등을 통해 속속 전해지고 있다. 간신히 죽음을 피한 이들은 “피가 낭자했고, 여기저기 시신이 있었다”며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공연장 테러는 22일(현지시각) 밤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벌어졌다. 이날 공연장에서는 러시아 록밴드 피크닉의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으며, 이를 보려는 관객 약 7000명이 몰려있었다. 하지만 콘서트 시작 직전 무장 괴한들이 공연장에 들어와 자동소총을 무차별 난사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후 괴한들은 인화성 액체를 뿌려 공연장 건물에 불을 지르고 현장에서 도주했다. 이 사건으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테러 생존자인 한 10대 소녀는 러시아 국영 통신사 RT에 “그들(테러범)이 우리를 봤다”며 “그들 중 한 명은 뒤쪽으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피를 흘리고 있었고, 바닥에 쓰러져 죽은 척 했다”며 “괴한들이 이미 쓰러진 시신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내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살해당했다”고 했다.

무장 괴한들이 공연장 내부에서 관객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다. /BBC 유튜브

모스크바 출신의 아리나(27)는 “갑자기 공연장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며 “콘서트의 일부인 줄 알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총격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했다.

아리나는 위장복을 입은 남자가 자동 소총을 들고 콘서트장으로 들어오는 장면, 한 사람이 총을 맞기 전에 괴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모두 땅바닥에 누워있었고, 내 옆에는 부상당한 사람들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운 좋게 공연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면서 “바닥 곳곳에 피가 흐르고 시체가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식이 없는 이들을 안고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AFP통신이 입수한 영상을 캡처한 사진. 3월 22일 늦은 밤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청사에 총을 들고 진입한 테러리스트들의 무차별 난사에 여기 저기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UGC / AFP 연합뉴스

또 다른 생존자 율리아는 “괴한들이 바로 뒤에 있었다. 나는 어깨에 총을 맞았고 남자친구는 팔다리에 총을 맞았다”며 “관자놀이에 총알을 맞은 한 여성이 내 바로 옆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이어 “입구에서는 한 명랑한 여자가 티켓을 팔고 있었는데, 도망칠 때 보니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티켓을 들고 쓰러져 있었다”며 “아직도 눈앞에 그 장면이 선명하다”고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생존자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괴한들의 모습과 군중들이 빠져나가는 모습 등을 촬영하기도 했다. 언론 보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보면, 아수라장이 된 공연장 내부에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자동소총을 든 괴한들이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도 포착됐다.

공연장 내부로 이동하는 무장괴한의 모습. /BBC 유튜브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 수는 133명이다. 러시아 매체 바자(Baza)에 따르면 총격을 피하려던 이들이 모인 화장실에서 28구의 시신이, 비상계단에서도 시신 14구가 발견됐다. 시신 수색이 계속 진행 중이며, 생명이 위독한 생존자도 있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 사건 관련자 1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핵심 용의자들은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브랸스크 지역에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끝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으나,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2024년 3월 22일 무차별 총격에 이은 화재가 발생해 지금까지 133명이 사망했다./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