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환경운동가가 4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COP28 유엔 기후 회의에서 피카츄 분장을 한 사람들과 함께 화석 연료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중동 산유국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갖은 논란을 양산하며 ‘역대 가장 어수선한 행사’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의장국 UAE의 온실가스 대량 배출 의혹과 함께 노골적인 화석 연료 옹호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일부 국가의 맥락 없는 이스라엘 비판이 쏟아지면서 점점 깊어가는 국가 간 경제·지정학적 갈등만 부각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 운동가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3일(현지 시각) 환경 문제 연구 단체 기후행동추적(CAT)과 함께 COP28 행사에 나와 “COP28 의장국 UAE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는커녕,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배출량을 늘려 기후 위기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날 CAT가 분석한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UAE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7.5%로, 전 세계 평균(1.5%)의 5배에 달했다.

또 고어 전 부통령은 “UAE의 국영 석유 기업인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ADNOC)’가 소유한 파이프라인에서 막대한 양의 메탄가스가 유출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ADNOC는 석유·가스 운송 과정에서 메탄 배출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도 했다.

메탄가스는 배출량 자체는 이산화탄소의 수백 분의 1에 불과하지만,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힘은 이산화탄소의 80배 이상이다. 이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2021년 COP26 때 메탄 방출량부터 줄이기 위한 합의를 내놓기 시작했다. 올해는 전 세계 석유·가스 회사 30여 곳이 “2030년까지 메탄 방출량을 80% 이상 줄이겠다”는 선언을 했다.

“화석 연료 사용 감축 요구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술탄 알 자베르 COP28 총회 의장의 발언도 물의를 빚고 있다. UAE의 첨단산업기술부 장관이자 ADNOC의 최고경영자인 그는 지난달 21일 열린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연합’ 행사에서 이 같은 주장을 내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화석 연료 사용량의 단계적 감축 합의 여부가 COP28 성공의 지표로 논의되는 상황에서 알 자베르 의장의 발언은 심각한 수준의 ‘이해 상충’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3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진행 중인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환경 운동가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위 사진). 고어는 COP28 의장국 UAE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빠른 속도로 늘려 기후 위기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했다. COP28 의장직을 맡은 술탄 알 자베르 UAE 첨단산업기술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열린 한 환경 행사에서 "화석 연료 사용 감축 요구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자베르 의장이 지난 2일 COP28에서 발언하는 모습(아래 사진) /AP·EPA 연합뉴스

지난해 COP27이 이집트에서 개최된 데 이어 올해도 산유국에서 열렸다. 국제사회는 기후 대응에 산유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라고 보고, 산유국들도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해 산업 전환 등에서 발맞춰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탄소 중립 이행 과정에서 석유 수요가 급격히 줄면 산유국들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UAE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중 약 30%, 국가 재정의 60%가 석유 관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측면 때문에 환경 단체들은 “UAE 같은 나라에서 COP28이 열리는 것은 중동 산유국의 이미지 세탁을 위한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고 주장해왔다.

COP28 행사 취지와는 상관없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토론에 끌어들여 회의장이 ‘이스라엘 성토장’으로 바뀌는 일도 벌어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난 1일 COP28 정상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은 전쟁 범죄”라며 “기후 위기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진 엄청난 파괴가 물 부족과 식량 불안정이란 환경 위협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행사장에서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주치자 “가자지구에 더 이상 민간인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란 대표로 참가한 알리 아크바르 메라비안 이란 에너지부 장관은 “이스라엘의 COP28 총회 참석은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목표와 전략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지난 1일 회의장을 떠났다. 의장국인 UAE는 지난 6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초청했으나 이란 측은 “이스라엘과 같은 회의장에 앉을 수 없다”며 반발, 에너지부 장관을 대신 내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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