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결선투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유진흥연합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후보가 승리 연설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AP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제3 세력 아웃사이더로 평가받던 하비에르 밀레이(53) 후보가 집권 중인 좌파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 후보를 누르고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수십 년간 이어진 포퓰리즘에 따른 극심한 경제난에 지친 민심이 결국 변화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19일 오후 10시 현재(현지 시각) 개표 99.1%가 진행된 가운데 ‘자유의 전진’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의원이 55.7%, 현 집권 세력이자 페로니스트인 ‘조국을 위한 연합’ 후보로 나선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이 44.3%를 득표해 밀레이의 승리가 확정됐다.

하지만 앞서 오후 8시10분쯤 마사 장관이 자신의 패배를 공식 선언하면서 일찌감치 밀레이의 당선이 결정됐다. 결선 투표는 이날 오후 6시 종료돼 당초 9시 이후 개표 현황이 공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마사 캠프와 각종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벌인 출구조사 등에 따라 승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일찌감치 패배를 선언한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앞서 지난달 진행된 본선 투표의 순위가 뒤집어진 것이다. 본선 투표에서는 마사가 1위(36.8%), 밀레이가 2위(30%)를 기록했다.

19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의원의 지지자들이 결과를 축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선거 결과를 판가름한 것은 역시 포퓰리즘에 따른 지독한 경제 실패였다. 현 정부는 지속 불가능한 공공 부문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돈 찍기’로 대응했고, 이에 아르헨티나 통화(페소화) 가치는 같은 기간 90% 이상 하락했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기준 142%에 달했고, 외화보유고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反)페로니즘을 슬로건으로 내건 밀레이가 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을 포섭하면서 한달 새 승기를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본선투표 직후 밀레이는 중도우파 제1 야당 ‘변화를 위해 함께’ 후보로 나서 3위(23.8%)로 탈락한 파트리시아 불리치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 과정에서 중도우파 야당 내 계파 분열이 있었지만, 불리치에 표를 던졌던 지지자 표의 상당 부분이 밀레이 쪽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밀레이는 경제난 타파를 위해 ‘최소 정부’ 컨셉의 정책을 들고 나와 표심을 사로 잡았다. 정부 부처 수를 줄이고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며 대부분의 세금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현재 연간 GDP의 40% 수준인 보조금 및 복지 등 공공지출을 15%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또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자국 통화인 페소화 대신 미국 달러화를 채택하겠다고 공약했다.

밀레이는 “정치적 카스트(계급)를 타파해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집권 페론당뿐 아니라 의회 절반을 양분하면서도 장기간 페로니즘의 병폐 막지 못한 중도우파도 ‘구태 정치 세력’으로 겨냥했다. 그의 공약과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반감은 특히 전체 유권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35세 미만 청년층에 먹혀들었다. 이에 그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밀레이 열풍’을 주도하게 만든 것도 승리 요인으로 꼽힌다.

19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집권 페론당 '조국을 위해 함께'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이 패배 승복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반면 마사는 현직 경제장관이라는 집권 프리미엄을 활용한 ‘돈 풀기’와 ‘가격 통제’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선거 직전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보너스를 살포하고, 대다수 근로자의 소득세를 감면했다. 공공 서비스 요금을 동결하고, 그대로 두었으면 수십%가 올랐을 필수 품목 약 2000개의 가격을 억지로 통제했다.

마사는 선거 기간인 지난 두 달간 발표한 포퓰리즘 정책에 GDP의 1.3%나 되는 재정을 투입할 계획을 발표했다. 본선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페로니스트식’ 민심 잡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날 승리한 밀레이는 별도의 대통령직 인수 준비 기간 없이 3주 뒤인 다음달 10일 취임해 곧바로 국정 운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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