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독수리'의 영향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중국 허베이성 당국이 사흘간 건물에 갇힌 수재민을 구했다며 공개한 영상. /웨이보

제5호 태풍 ‘독수리’의 영향으로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만 11명이 숨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당국의 수재민 구조 장면이 연출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허베이성에서는 ‘베이징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곳의 수위를 올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중국 관영매체는 “서방 언론의 이간질”이라고 반박했다.

7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나흘 동안 베이징 지역에는 140년을 통틀어 가장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에도 행정 구역 절반 이상에 홍수가 났고, 이재민 222만2900명이 발생했다.

이후 중국 언론에서는 허베이성 당국이 사흘간 건물에 갇혔던 수재민을 구하는 영상이 보도됐다. 영상 속 헬기에 탄 구조대는 “도로가 호수로 변해 주민들이 고립됐고, 구조 보트도 접근이 안 된다”고 말한다. 건물 옥상에 있던 주민 6명은 구조대원들의 도움으로 헬기에 탑승했다. 한 주민은 구조대원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손을 끌어 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이 영상이 연출된 상황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헬기에서 내려가는 구조대원 뒤편으로 도로 상황이 보이는데, 차량 바퀴 반 정도밖에 물이 차 있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 심지어 도로의 시민들은 구조 장면을 태연히 휴대전화로 촬영까지 했다.

구조대원 뒤로 보이는 허베이성 도로의 상황. 차량 바퀴 절반 정도의 물이 차 있고, 일부 시민은 태연히 구조 상황을 촬영하고 있다. /웨이보

이 밖에도 복구 작업에 지친 한 군인이 도시락을 손에 든 채 그대로 잠들었다는 사진 보도도 문제가 됐다. 처음에는 ‘감사하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지만, 3년 전 다른 재해 현장이라는 사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드러났다.

이처럼 당국의 구조 미담 기사는 쏟아지지만, 허베이성 주민들의 불만은 보도되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인구 2180만명인 베이징에서 이번 폭우로 11명이 숨졌다. 그런데 이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914만명이 사는 베이징 동남쪽 바오딩시에선 10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실종됐다.

그러자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선 사실상 농촌인 베이징 외곽 지역과 허베이성에 침수‧인명피해가 집중된 건 베이징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하천 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허베이성 서열 1위인 니웨에이펑 당 서기가 지난 3일 소셜미디어에 “베이징의 홍수 압박을 경감하기 위해 (허베이성에서) 물을 제어하는 조치를 강화하겠다. 이는 수도를 위한 해자(垓子‧성 주위를 둘러싼 못) 역할을 잘 수행해내기 위함”이라는 글을 올린 게 의심에 불을 지폈다.

7일 중국 허베이성 줘저우시 시민들이 태풍 '독수리' 영향으로 파괴된 다리를 건너고 있다. 최근 태풍이 몰고 온 폭우로 허베이성 행정구역 절반 이상에 홍수가 나 222만2천9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웨이보에는 허베이성 주민들이 정부 청사를 찾았다가 경찰과 충돌한 영상들이 공유됐다. 다만, 이와 관련한 게시물들은 속속 삭제됐다.

영국 BBC는 관영 언론의 보도에 시민들이 분개했다고 보도했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베이징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침수시킨 마을에서 분노가 쌓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앙‧지방정부의 구조를 위한 노고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베이징을 위해 허베이성을 희생시켰다는 건 서방 언론의 과장이라고 탓을 돌렸다. 매체는 베이징 환경문제 연구소 소장의 말을 빌려 “중앙 정부는 홍수 예방과 인명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베이징이든 허베이든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는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대한다”고 했다. 이어 “전문가들은 서방 언론의 과장된 보도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 국민과 정부 사이에 불화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