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은 이미 그려진 작품을 단시간에 여러 장 복사해 내는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화제작들을 만들어냈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팝 스타 프린스(1958~2016)의 초상화로 작업한 연작도 그중 하나다. 내년이면 탄생 40주년을 맞는 이 작품에 대해 미 연방 대법원이 “다른 예술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골드스미스가 찍은 프린스 사진(왼쪽)과 앤디 워홀의 초상화. /트위터

미 대법원은 이 초상화 연작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두고 앤디 워홀 재단과 사진작가 린 골드스미스 사이에 벌어진 소송에서 7대 2로 골드스미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CNN 등 미 언론들이 1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워홀의 프린스 초상화 연작은 1984년 패션 잡지 ‘베니티 페어’의 의뢰로 만들었다. 이때 프린스는 최대 히트작인 ‘퍼플 레인’을 발표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워홀은 초상화 밑그림으로 골드스미스가 1981년 촬영한 프린스 사진을 사용했다. 그는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프린스 사진에 다양한 색을 입혀 총 16점을 제작했다. 골드스미스는 2016년 프린스가 숨지고, 베니티 페어에 부음 기사가 난 다음에야 워홀이 자신의 사진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 문제가 법적 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워홀 재단이 2017년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법원에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골드스미스도 맞소송을 냈다. 1심은 2019년 “워홀의 작품이 원본과의 차이점이 분명한 만큼 골드스미스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워홀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난해 3월 2심 재판부는 “(워홀의 저작권이 인정되기 위해선) 새로운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 이상의 창작성이 부여돼야 한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도 2심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원작 사진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보호에는 원본을 변형한 파생적인 작품에 대한 보호도 포함된다”고 했다. 이어 “골드스미스의 사진과 워홀의 작품이 (잡지 기사용이라는) 같은 상업적인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며 “워홀 재단 측은 사진의 무단 사용에 대해 다른 설득력 있는 정당성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저작권 침해 판결 시) 모든 종류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새로운 예술과 음악, 문학을 방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케이건 대법관과 함께 반대 의견에 섰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른 작품의 일부 혹은 전체를 가져와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이른바 ‘차용(appropriation) 예술’에 대한 법적 논쟁이 격화하고, 다양한 창작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