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필리핀 북부 잠발레스 앞바다에서 필리핀과 미국의 연합 군사 훈련 '발리카탄'이 진행되고 있다. '선박 침몰' 작전 수행을 위해 '고속 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이 발사되고 있다./AP 연합뉴스

미군과 필리핀군이 중국의 남중국해 상습 침범에 대응, 가상의 적국 군함을 향해 실사격을 가해 해저로 가라앉히는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 미 국무부는 남중국해 등에서 필리핀 선박이나 항공기가 공격받을 경우 개입해서 방어하겠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중국의 도전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30일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달 11일부터 28일까지 실시된 미국과 필리핀의 연합 군사 훈련 ‘발리카탄(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에서는 처음으로 실탄 사격을 통한 ‘함선 격침 훈련’이 실시됐다. 훈련 마무리 단계에서 필리핀 퇴역함을 남중국해 해상에 위치시킨 후, 항공기 등에서 사격을 가해 침몰시켰다. 미군은 “지상과 공중의 무기로 (적국 함선을) 탐지, 식별, 조준한 뒤 공격한 훈련”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남중국해뿐 아니라 바시 해협(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해협) 등 주요 지역에서 중국과 일어날 수 있는 전투를 상정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필리핀이 베이징에 대항해 군사 협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했다.

훈련 참관하는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운데)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마닐라 북부 잠발레스주 해군기지에서 미군과 필리핀군 관계자에게 브리핑을 받고 있다. 미국과 필리핀의 연례 합동 군사훈련인 ‘발리카탄(어깨를 나란히)’은 올해 최대 규모로 열렸다. /EPA 연합뉴스

올해 발리카탄 연합 훈련은 미군 1만2200명, 필리핀군 5400명 등 총 1만7600명이 참가해 역대 가장 큰 규모였다. 훈련에는 고속 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하이마스)과 단거리 대공 방어 차량인 어벤저(Avenger), 아파치 공격 헬기, F-35 스텔스기와 특수전 항공기 AC-130 등 미군의 최신 주력 전투기들이 동원됐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는 29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중국 해안경비대가 남중국해에서 계속 항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필리핀과 함께한다”며 “중국 정부가 도발적이며 위험한 행동을 그만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국무부는 “미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해양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 필리핀과 함께하며, 남중국해를 포함한 태평양에서 필리핀 해양경비대를 포함한 필리핀의 군, 공공 선박이나 항공기에 대한 무력 공격은 1951년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4조의 상호방위공약을 발동시킨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태평양 해상에서 필리핀 함정 등이 공격받을 경우, 공동의 평화를 해치는 공격으로 간주하고 유엔 차원에서 대응해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미국 입장은 최근 중국이 필리핀 앞바다인 남중국해 일대에서 위협을 확대하는 가운데 나왔다. 29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외교부는 전날 성명을 내고 최근 자국 해역인 세컨드 토마스 암초(필리핀명 아융인섬) 지역에서 중국 해안 경비정들이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외교부는 “(지난달) 22일 순찰 중이던 우리 해양경비정과 대원들을 상대로 중국 함정 2척이 위협을 가했으며, 이 중 한 척은 45m 떨어진 곳까지 근접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필리핀 함정이 중국 해역을 침범했다고 맞서며 “필리핀은 중국의 영토 주권과 해상에서의 권리를 존중하라”고 주장했다.

필리핀 잠발레스주 샌안토니오 해군기지에서 패트리엇 미사일이 발사된 모습. /로이터 뉴스1

이날 충돌이 일어난 세컨드 토마스 암초는 중국과 필리핀 등이 영유권 분쟁 중인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 군도) 내에 위치하고 있다.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인 이곳에는 현재 필리핀 해군이 주둔 중이다. 그러나 중국은 1953년 남중국해에 그은 9개 선인 ‘남해구단선’에 이곳이 포함되므로 자국 관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PCA)는 이 같은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같은 입장을 고수해 필리핀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2월에도 세컨드 토머스 암초 지역에서 음식과 군용 물자 보급 작업을 지원하던 필리핀 선박을 향해 중국 함정이 군사용 레이저를 조사(照射)해 긴장이 올라갔다.

필리핀은 2016년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친중(親中) 행보에 나서면서 미국과 연합 훈련을 축소했지만, 작년 마르코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훈련 규모를 다시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