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 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뒤집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26일 ‘워싱턴선언’의 의미를,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분석했다. 지난 수년간 미국은 핵공격 대신 비핵(非核) 공격 옵션을 강화해왔지만, 이번 선언에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분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관저에서 열린 친교행사에서 발코니에 나가 워싱턴 주변 전경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다. /뉴스1

NYT는 이날 ‘핵 억제의 대가로 바이든은 북한이 공격할 경우 ‘종말’을 맹세했다’(In Turn to Deterrence, Biden Vows ‘End’ of North Korean Regime if It Attacks)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냈다.

기사에서 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불안정한 독재 정권(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에서 억지력으로 폭넓게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백악관에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국빈 방문으로 초청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과의 모든 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위한 전략 계획상 처음으로 한국에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번 협정의 중요성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언급을 자제했음에도, 전후 맥락과 윤 대통령 발언을 통해 드러난 내용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26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우선 한국 내에서 ‘독자 핵무장’에 대한 찬성 여론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한국 국민들에게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한 내용이 협정에 담겼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선언의 중요성을 바이든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확장억제 전략의 전례 없는 확장과 강화’라고 부르며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합의된 대응이 ‘지금까지 이렇게 강력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또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해 즉각적인 양자 대통령 협의에 합의했으며,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한 동맹의 모든 힘을 동원해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단호하게 대응하기로 약속했다”는 윤 대통령 발언을 지목했다.

이어 NYT는 미국이 그동안 국방 전략에서 핵무기 역할을 줄이겠다고 약속해온 흐름에서 볼 때 ‘워싱턴 선언’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바이든 정부가 거의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은 ‘미국 국방 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약속을 뒤집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번 선언의 두 번째 의미를 NYT는 풀이했다.

미국은 핵을 제외한 공격 옵션을 개선해왔고 한 시간 만에 전 세계의 모든 목표물에 도달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의 정밀도와 위력을 향상시켜왔다. 하지만 한국이 북한의 핵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확장억제 강화를 강력히 희망해왔기 때문에 예외를 인정했다는 것이 NYT 분석의 취지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관저에서 열린 친교행사에서 동맹 70주년 사진집에 서명하고 있다./뉴스1

같은날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번 선언으로 미국의 대북 핵대응에 대한 한국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WSJ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직후 ‘한미, 핵무기 잠재적 사용에 대한 협력 약속’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미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이 한국 정부에 북한의 공격에 대한 미국의 핵대응 가능성에 관한 협의에서 “더 큰 목소리”를 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워싱턴 선언’으로 불리는 이번 협정을 통해 한국 정부는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다시 천명하는 대가로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핵무력 사용에 관한 협상에서 오랫동안 추구해온 위상을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