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7년간 단절된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왼쪽부터)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카니(오른쪽)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이 베이징 회담장에 앉아 있다. /이라크 rudaw.net

중동의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2016년 단절된 외교 관계를 7년 만에 회복하기로 했다고 10일(현지 시각) AFP통신이 양국 현지 관영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슬람 양대 진영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란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분쟁으로 점철된 중동 지역에 화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란 관영 IRNA통신은 이날 “이란과 사우디가 회담을 마친 뒤 외교 관계를 재개하고 두 달 이내에 대사관과 공관을 열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사우디 국영 통신사도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IRNA통신에 따르면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6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 양국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디 측과 긴밀한 협상을 진행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2016년 사우디가 자국 시아파 지도자들의 사형을 집행하자 이란 강경 보수 세력이 이란 주재 사우디 공관 2곳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국교를 단절했다. 예멘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이 2014년부터 내전을 벌이기도 했다. 2019년 사우디 정유 시설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아 사우디 원유 생산의 절반가량이 차질을 빚었을 때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양국은 2021년부터 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 지난해까지 5차례 회담을 가졌다. 이날 사우디와 이란은 성명을 통해 “2021년과 2022년 대화를 중재해 준 이라크와 오만, 그리고 대화를 마련하고 지원해준 중국 지도자들과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관계 복원은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이 지난 1월 29일(현지 시각)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열겠다고 발표하면서 공식화됐다. 당시 아미르압둘라히안 장관은 사우디와 바레인 등 걸프 지역 수니파 국가들과 중개국을 통한 간접적 메시지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하며, 이를 영구적인 협력 관계로 확대할 것을 천명했다.

이날 양국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린 중국 베이징에서 이뤄졌다.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은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나흘간의 회담 끝에 이날 국교 정상화에 최종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 베이징을 방문, 시진핑 주석과 함께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중동에서 미국이 서서히 발을 빼는 것으로 걸프 국가들이 인식하는 가운데 중국이 거둔 중요한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이란과 최근 두터운 관계를 맺어온 중국이 양국을 중재하기 적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사우디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며, 미국의 경제 제재로 판로가 막힌 이란산 원유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CAPRO의 아드난 타바타바이 대표는 알자지라에 “중국은 사우디와 이란 양국이 균형을 이루고 중동 지역 안보 상황이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 (무역 등에) 큰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측은 “이란과 사우디가 외교 관계를 복원한다는 보도를 접했다”고 언급하며, “중동 지역 갈등을 완화하는 모든 노력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우디는 아랍 수니파의 전통적 교리인 살라피즘을 근간으로 해 완고하며 보수적이다. 부족주의 문화와 결합된 절대 왕정 통치 체제를 갖고 있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 혁명 사상에 기반한 이슬람 성직자 통치 체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공화제를 채택해 선거를 시행하지만 최고지도자는 거의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