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초마데아시노바세요(歌舞伎町まで足ノバ세요).’

지난달 28일 도쿄 신주쿠 하쿠닌초의 한 건물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 주점과 클럽, 가라오케 등이 밀집한 일본 지역 ‘가부키초(歌舞伎町)’와 일본어로 발을 뻗다는 뜻의 ‘足ノバ’에 우리말 ‘~하세요’를 결합한 것이다. 직역하면 ‘가부키초까지 발을 뻗으세요’라는 뜻으로, 가부키초로 놀러 오라는 말을 일본어와 한글을 섞어 표현했다.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일본어와 한글을 섞어 쓰는 ‘언어 합체’ 현상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일한믹스어(日韓ミックス語)’라고 불리는데, 일본 유명 코미디언이 두 나라 말을 섞어 쓰는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면서 10~20대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한국 유튜버들의 ‘한본어(한국어+일본어)’ 영상이 일본에 알려지면서 ‘한보노(ハンボノ)’라고도 불린다.

특히 일본인 멤버가 있는 K팝 아이돌 그룹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면서 일본 Z세대 사이에선 한본어가 일상생활어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대생 이마다(22)씨는 “주변에서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한본어를 꽤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일본 음식 체인점은 일본어 ‘좃토(ちょっと·조금)’와 한국어 ‘맵다’를 발음 나는 대로 적은 ‘메푸타(メプタ)’를 결합해 ‘좃토 메푸타(조금 맵다)’라고 설명한 한정 메뉴를 판매하기도 했다.

한본어의 대표적인 방식은 문법적 유사성을 활용해 두 언어의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바인데(やばいンデ)’는 ‘대박’이라는 뜻의 일본어 ‘야바이’에 ‘~인데’라는 우리말을 합한 단어다. 우리말 ‘진짜’를 일본어 문장에 넣어 ‘진차우마이(チンチャうまい·진짜 맛있어)’ ‘진차소레나(チンチャそれな·진짜 그래)’처럼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우리말 동사를 일본식 동사처럼 바꾸는 등 다양한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밥을 주문하다’라는 뜻의 ‘고항시키루(ご飯シキる)’는 ‘음식을 주문하다’는 뜻의 우리말 ‘시키다’에 ‘루(-る)’를 붙여 일본어 동사처럼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