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성 미카엘 성당 앞을 함께 걷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지난해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서방 동맹국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확실하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격 방문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오는 24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원 의지를 밝히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출발한 특별 열차편으로 오전 8시쯤 키이우 중앙역에 도착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정상들이 키이우를 방문할 때 이용한 것과 같은 경로다.

그는 키이우 도착 일성으로 “전쟁 1주년을 눈앞에 앞둔 지금, 우크라이나도 민주주의도 모두 굳건히 버티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국민을 격려했다. 이어 오전 8시 30분, 우크라이나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마린스키궁에 도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의 환대를 받았다.

전사자 추모의 벽 앞에서 포옹 -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전사자 추모의 벽 앞에서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포옹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바이든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위한 5억달러(약 6485억원) 규모의 새 군사 원조 계획을 발표했다. 또 M1 에이브럼스 주력 전차 지원 결정에 이어 F-16 전투기 등 우크라이나가 요구해 온 다양한 최신 무기 제공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통령이 자국 군대가 없는 전쟁 지역에 간 것은 이례적이다. 바이든은 20일 오전 8시(현지 시각) 파랑·노란색 줄무늬 넥타이에 파란색 정장을 입고 키이우에 도착했다. 이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정 연설 하루 전날이기도 했다. 백악관 풀(Pool) 기자단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밤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워싱턴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극비리에 이동했다. 오전 4시 15분(미 동부 시각) 앤드루스 전용기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해 폴란드 국경 인근 제슈프 공항에 도착, 이후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20일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에 참배한 뒤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백악관 기자단은 “바이든 대통령의 동선 보안 때문에 (대통령 일정을) 알리지 않기로 합의했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는 전쟁 지역인데 과거 이라크·아프가니스탄처럼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곳이어서 특히 바이든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까다로웠다”고 했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대통령궁에 도착한 직후 “나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영토 보존에 대한 우리의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1년 전) 공격이 시작된 그 즈음에 미국 대통령이 여기(우크라이나)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서 “오늘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워싱턴에 광범위하고 초당적인 지지가 있었다”며 “의회 내 일부 불일치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대해선 중요한 합의가 있다”고 했다.

바이든은 별도 성명을 통해 “나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공중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포탄, 대장갑 시스템, 항공 감시 레이더를 포함해 추가 지원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젤렌스키는 “바이든의 방문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중요한 신호”라며 “장거리 무기와 아직 우크라이나에 제공되지 않은 무기들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F-16 전투기 등 공중 전력 제공을 요청해왔는데, 바이든이 키이우 방문 후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안내로 헌법 광장 근처 '용감한 자의 발걸음(Walk of The Brave)' 거리에 새긴 조 바이든 대통령 명판을 둘러보고 있다./EPA 연합뉴스

바이든은 키이우에서 약 5시간 동안 머물면서 젤렌스키와 회담하고, 성 미카엘 대성당 인근의 전사자 추모의 벽 등을 찾은 후, 폴란드로 떠났다. 바이든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어떻게 세계를 결집시킬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년 전 침공을 시작했을 때 우크라이나가 약하고 서방이 분열됐다고, 또 러시아가 우리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완전히 틀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 제재를) 회피하려 하거나 러시아 군수물자를 보충하려는 엘리트층과 기업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금주 내) 발표할 것”이라며 러시아에 대해 경고도 했다.

20일 성 미카엘 성당 우크라이나 전사자 추모의 벽에 놓인 조 바이든 대통령 조화./AP 연합뉴스

바이든의 키이우 방문 가능성은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젤렌스키는 지난해 워싱턴을 방문, 바이든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우크라이나 방문을 요청했다. 바이든은 이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고 답한 바 있다. 당시 백악관은 “안전 등의 문제로 방문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으나, 유럽 외교가에서는 “개전 1주년을 맞아 키이우를 답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계속 나왔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동부를 방문할 것”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두다 대통령은 1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나토가 그들과 함께한다는 느낌을 우크라이나와 군인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의 키이우 방문 가능성을 암시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저녁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연설을 할 것”이라며 “순방 기간에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만남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해 두 사람의 극적 회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17일 “바이든 대통령은 폴란드 외에 다른 경유지는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했던 것에서 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