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현지 시각)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운데)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 최종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글레이지 호프만 노동자당 대표, 룰라 당선인 아내 호잔젤라 다시우바, 룰라 당선인, 제랄두 알키민 부통령 당선인, 알로이시오 메르카단테 수석보좌관. /로이터 연합뉴스

내년 1월 1일 취임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이 남미 지역의 단일 화폐 도입 프로젝트에 본격 돌입했다. 룰라 당선인은 또 자신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등이 주도해 창설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화된 우나수르(UNASUR·남미 국가 연합) 재건에도 적극 나설 전망이다. 룰라의 당선으로 사상 최대 핑크타이드(pink tide)를 완성한 중남미 지역에서 좌파 정권들의 연대와 동맹화가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6일(현지 시각) 브라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룰라 당선인은 다음 달 23~25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양국 정상은 남미 단일 화폐 통합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미 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 및 관료들이 브라질을 방문해 실무진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룰라는 당선 전 연설에서 “계속 미국 달러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라틴아메리카 단일 화폐를 만들 것”이라면서 “화폐 이름은 ‘수르(Sur·스페인어로 남쪽)가 될 것”이라고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남미 지역 국가들의 연합기구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룰라는 지난 2008년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유럽연합(EU)’을 모델로 한 ‘우나수르’를 설립했다. 하지만 한때 ‘남미판 유럽연합’이라 불리며 남미 12국이 모두 가입했던 우나수르는 2018년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등 우파 정권이 집권한 7국이 줄줄이 탈퇴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룰라는 우나수르에 강한 애정을 보이면서 부활을 예고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룰라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셀소 아모림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앞으로 룰라의 외교정책은 기후 변화 대응, 라틴아메리카 통합, 아프리카와의 관계 개선에 큰 초점을 둘 것”이라면서 “특히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만든 우나수르 등 지역 통합 기구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남미 좌파 국가들도 룰라의 비전에 공감과 동참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등 7명의 전직 대통령과 50여 명의 정·재계 인사들은 “우나수르 재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나수르의 부활이 룰라와 브라질의 글로벌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룰라는 당선 후 승리 연설에서 “전 세계에 브라질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린다”면서 “그동안 국제 사회에서 왕따(pariah) 국가로 고립됐던 브라질의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우나수르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칠레 일간 라 테르세라는 “이념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우나수르는 막대한 비용만 들이고 지역 통합이라는 목표엔 실패했다”면서 “정권 교체나 독재 정권의 출현에 자유롭지 못한 관료 기구를 부활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브라질 국내에선 두 달 가까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선 불복 시위가 이어지며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브라질 법원은 29일 오후 6시부터 룰라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인 다음 달 2일까지 수도 브라질리아 내 총기 휴대 금지령을 내렸다. 지난 24일엔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로 알려진 한 남성이 공항 주변에서 폭탄 테러를 시도하다 붙잡혔고, 28일엔 룰라 당선인이 사는 곳과 가까운 시내 호텔에서 의문의 가방이 발견돼 폭발물처리반이 긴급 출동하는 등 테러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제 성장 둔화와 빈곤층 증가, 인플레이션 등 경제 문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 21일 브라질 의회는 룰라 당선인의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해 정부 지출 상한선을 1450억 헤알(약 35조원)로 늘리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중 대부분은 빈곤층에 매달 현금 600헤알(약 14만원)을 지원하는 ‘보우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에 쓰일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룰라의 정책이 브라질의 공공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아르미니오 프라가 전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에 “룰라의 복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쏟아붓는 현금은 소비자 수요를 자극하고, 물가 안정을 방해할 것”이라면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노동 시장 긴축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 확대는 투자자들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나수르(UNASUR)

남미 대륙에 좌파 정권이 득세한 1차 핑크 타이드 당시 출범한 국가 연합 기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브라질) ,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등 당시 각국 대통령이 창설을 주도했다. 한때 남미 12국이 모두 가입했으나, 2018년 우파 정권이 집권한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7국이 탈퇴해 유명무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