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시민들이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로햄튼 도서관에 마련된 ‘웜 뱅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이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요금이 급등하면서 영국 전역에 3000곳 이상의 ‘웜 뱅크(warm bank·따뜻한 은행)’가 문을 열었다고 25일(현지 시각) CNN 방송이 보도했다. ‘웜 뱅크’는 난방비를 내기 어려운 시민들이 낮에 무료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로 도서관·교회·커뮤니티 센터 등 공공장소에 마련됐다. 영국에서는 이달 중순 12년 만에 최저기온을 기록하는 등 한파가 몰아치면서 겨울철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영국에는 3723개의 웜 뱅크가 등록돼 있으며 지방 의회 예산이나 민간 단체, 기업 재단 등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 동부 노리치시의 웜 뱅크를 찾은 마이클 이스터(57)씨는 CNN에 “생활비가 50% 이상 늘어서 올겨울 아파트 난방을 두 번밖에 못 했다”면서 “웜 뱅크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곳에서 웜 뱅크를 운영하는 복지 단체 직원 그레이스 리처드슨은 “젊은 부모부터 연금 수급자, 20대 학생까지 다양한 계층이 웜 뱅크를 이용한다”면서 “이제는 정규직 근로자도 생계 유지가 어려워 웜 뱅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전의 위기와 달라진 점”이라고 했다.

영국은 지난 10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의 최고치인 11.1%를 기록하는 등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영국 의회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가스·전기 요금은 전년 대비 각각 129%, 66% 증가했다. 올해 영국 가정의 연평균 에너지 요금은 2500파운드(약 390만원)로 지난해 대비 96% 올랐다. ‘연료 빈곤 중단 연대’의 사이먼 프랜시스는 “수입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하는 ‘연료 빈곤층’이 2020년 369만 가구에서 올해 699만 가구로 늘었다”면서 “정부가 난방 취약 계층을 위해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한파로 인해 병원을 찾는 환자와 사망자가 폭증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 정부는 가계 에너지 요금 상한을 2500파운드로 제한하고 차액을 예산으로 지원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연료 빈곤층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요크대는 올해 8월 연구에서 내년 1월까지 영국 가구의 4분의 3 이상인 5300만명이 연료 빈곤층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시의회 의장 수전 에이트켄은 “누군가에겐 이번 크리스마스가 집에서 몇 시간 동안 난방을 할 수 있을지 계산해야 하는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됐다”면서 “빈곤층에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푸드 뱅크에 이어서, 웜 뱅크까지 생겨난 것은 절대적으로 정부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