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레바논에서 후임자가 선출되지 않은 상황에 현직 대통령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는 바람에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 됐다. 레바논은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지난 5월 총선을 통해 새로 출범한 의회가 그동안 네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주요 정파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후임 대통령을 뽑지 못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이 지나 30일 대통령궁을 떠나면서 차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30일(현지 시각) AP 통신에 따르면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지난 6년간의 공식 임기 종료를 하루 남기고 이날 대통령궁을 떠났다. 아운 대통령은 이날 나지브 미카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사의도 수리했다. 이에 따라 의회가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고, 선출된 대통령 주도로 새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임시 내각 체제로 운영된다. 아운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임시 내각은 국가를 운영할 완전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국가가 헌법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 2014년 5월 미셸 술레이만 전 대통령이 퇴임했을 때도 정파 간 갈등으로 2년 넘게 대통령을 뽑지 못했다.

2019년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 위기는 코로나 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지난 2년 동안 90% 이상 폭락했다. 지난 17일에는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은 빈곤선 이하로 추락했다.

국정 공백 상태가 길어지면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레바논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향후 4년 동안 30억달러(약 4조2780억원)를 지원받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정치적 혼란으로 IMF가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한 금융 부문 구조 조정, 재정 개혁, 반부패 조치 등 개혁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경제부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나세르 사이디는 “아운 대통령의 퇴임 전부터 IMF와의 협상 전망은 어두웠다”면서 “(레바논 정부는) 개혁에 착수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 연대하며 2016년 취임한 아운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지난 27일 이스라엘과 10년 넘게 끌어온 영유권 분쟁을 일단락짓고, 해상 경계 획정안에 공식 합의한 것은 주요 성과로 꼽힌다. 반면 반대파들은 아운 대통령이 헤즈볼라의 영향력을 키웠고, 정치권의 뿌리 깊은 부패와 무능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