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이 장기화하면서 동유럽 지역의 주민들이 갈탄·목재 등 값싼 연료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주유소 모습./AFP 연합뉴스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헝가리·슬로바키아·불가리아 등 동유럽 전역에서 치솟은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지 못한 주민들이 갈탄·목재는 물론이고 불법 폐기물까지 태워 난방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겨울을 앞두고 집집마다 화석연료·장작 등을 비축하기 시작하면서 땔감 비용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이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빈곤율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경고했다. 헝가리 경제학자 데이비드 네메스는 “생활에 필수적인 에너지·식량 가격이 상승하면 많은 인구가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고, 기존의 빈곤층은 더 극심한 빈곤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헝가리 북부 오즈드에 사는 50대 남성 졸탄 베르키씨는 땔감을 살 돈이 없어 나뭇가지나 오래된 축구화 등 폐기물을 태워 추위를 견디고 있다. 베르키씨는 FT에 “월급이 500유로 정도인데, 요즘 한 달 치 땔감이 200유로 이상”이라면서 “순찰하는 경찰들이 검은 연기를 볼 수 없도록 밤에만 쓰레기를 태우고 있다”고 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올여름부터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갈탄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폴란드도 에너지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석탄 연소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고, 일부 가구에 석탄 구매를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집권 여당 ‘법과 정의당’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대표는 지난달 “난방을 위해 타이어를 제외한 모든 것을 태워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장작을 구하기 위한 불법 벌목도 늘었다. 폴란드와 접한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산맥 인근의 소도시 노바레스나에서도 벌목이 늘고 있다. 페터 리츠 노바레스나 시장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난방 방식이나 환경 오염 수준이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다”면서 “갑자기 늘어난 연기와 스모그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의 최빈곤국 중 하나인 코소보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이 나무를 태워 난방한다. 코소보 환경 단체 ‘에코Z’는 “잦은 정전 등 불안정한 전기 공급으로 인해 올해 벌목량이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유럽에서 화석 연료와 유해 물질을 대량으로 태워 이 지역의 탄소 배출량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헝가리 환경 단체 ‘그린 커넥션’의 수산나 내기 이사는 “수년간의 청정 연료 개발은 이제 물거품이 될 것”이라면서 “생존이 걸려 있기에 사람들은 (난방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태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