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총리 자리를 예약한 조르자 멜로니(45)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가 약 한 달 만인 22일(현지 시각) 총리 자리에 공식 취임했다. 멜로니 총리는 극우 성향 FdI를 창당하고 유럽연합(EU) 탈퇴와 반(反)이민 등 정책을 주장해 유럽 내 중도·좌파 진영으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멜로니 총리는 이번 내각 인선에 친(親)EU 성향 인물을 대거 등용, 자신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신임 총리 지명자. /EPA연합뉴스

멜로니 신임 총리와 24개 부처 각료들은 이날 로마 퀴리날레궁의 대통령 관저를 찾아 취임 선서를 했다. 멜로니 총리는 취임 선서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와 장관들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탈리아에 봉사하겠다”며 “지금부터 바로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앞서 21일 밤 멜로니 FdI 대표를 총리로 지명하고, 그에게 정부 구성 권한을 위임했다.

멜로니 내각의 핵심에는 친EU 인사들이 포진했다. 잔카를로 조르제티 재무장관은 극우 동맹(Lega) 소속으로, 전임 마리오 드라기 내각에서 경제개발부 장관을 지낸 대(對)EU 온건파다. 안토니오 타자니 외교장관은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친유럽 인사다. 베를루스코니 전진이탈리아(FI) 대표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귀도 크로세토 국방장관은 멜로니 총리와 함께 FdI을 창당한 핵심 측근이다. 당초 내무장관직을 요구했던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는 부총리 겸 인프라·교통장관이 됐다. 장관직 24개 중 9개가 FdI에 돌아갔고 동맹과 FI, 관료 출신들이 5개씩 가져갔다. 24명 중 여성의 비율은 25%(6명)로, 30%를 상회하는 EU 평균보다 낮았다.

조르자 멜로니(가운데) 이탈리아 신임 총리가 22일(현지 시각) 로마 대통령 관저를 방문해 세르조 마타렐라(왼쪽에서 둘째) 대통령의 안내를 받고 있다. 이날 멜로니 총리는 24개 부처를 이끌 각료들을 이끌고 마타렐라 대통령과 면담한 뒤 국정 운영 개시를 알렸다. /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새 총리 앞에는 에너지 가격 급등,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친러 성향의 연정 파트너 등 난제가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멜로니 총리는 당초 “과감한 재정 지출과 대대적인 감세로 이탈리아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감세 정책이 대실패하면서, 이와 유사한 멜로니의 공약도 실현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150%로 영국(103%)보다 훨씬 높다.

멜로니는 당분간 친EU 색깔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EU의 단결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고, EU가 2026년까지 이탈리아에 제공하는 신종 코로나 극복 기금 1915억유로(약 275조원)를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2일 트위터로 “유럽이 함께 직면한 도전에 대해 이탈리아 새 정부의 건설적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심 동맹이자, 공동의 도전에 함께 대응하는 긴밀한 동반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