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넣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 5일(현지 시각) 프랑스 북부 주네의 한 주유소 앞에 연료를 넣으려는 차들이 길게 줄 섰다. 프랑스에선 지난달 27일부터 이어진 정유 기업 노동자들의 파업 등으로 주유소 곳곳에서 연료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올겨울 사상 최악 에너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올겨울 사상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유럽 각국이 강력한 에너지 절감 대책에 돌입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일제히 실내 온도를 19도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고, 일부 시설물에 대해서는 온수 공급도 차단하기로 했다. 최악의 경우 전기와 가스 강제 공급 중단 또는 배급이라는 극단적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6일(현지 시각) 겨울철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와 공공기관은 건물 내부 온도가 19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난방을 제한하기로 했다. 한파 등으로 전력 공급의 부담이 높아지는 날은 18도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프랑스의 천연가스 의존도는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전력 생산의 70%를 감당하는 원자력발전소 57기 중 32기가 점검 등의 이유로 제대로 가동을 못 하고 있다. 더군다나 전기로 난방을 하는 가정이 전체의 42%에 달해 난방용 전기 수요가 많다. 난방 온도를 낮추는 대신 공무원들이 따뜻하게 입고 올 수 있도록 셔츠와 정장을 기본으로 한 복장 규정은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검은색 목티나 스웨터를 입은 모습을 공개했다.

공공시설 화장실에서는 온수 공급도 제한한다. 출장 시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고, 차량을 이용할 경우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를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최고속도 제한이 130㎞다. 프랑스 정부는 앞서 상점의 문을 열어놓은 채 냉난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공항과 기차역 등을 제외한 곳에서 심야 조명 광고를 금지하는 등 에너지 절감 조치를 내놨었다. 프랑스 파리의 명물인 심야 에펠탑 조명도 기존 새벽 1시까지 켜던 것을 밤 11시 45분으로 1시간 15분 당겼다. 아녜스 파니에뤼나셰 프랑스 에너지부 장관은 “올겨울 에너지 배급제를 시행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한다”며 “함께 조금씩 노력하면 강제적 조치 없이 무사히 겨울을 넘길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총리, 에너지 절감 대책 발표 -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가 6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정부의 에너지 절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독일은 천연가스 절약을 위해 가을과 겨울 난방 온도 제한, 기념물 조명 중단 등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 중이다. 에너지안전법에 따라 병원과 사회복지시설을 제외한 모든 공공건물의 난방 온도를 최고 19도로 제한했다. 또 야간에 건물이나 각종 기념물, 옥외광고에 대한 조명을 대폭 줄이고, 분수대 운영도 중단했다. 주요 기업, 노동 단체 등과 협의해 기업 사무실의 난방 온도 및 조명도 줄이고 있다. 하노버에서는 수영장과 스포츠센터의 샤워실에 온수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독일 역시 개인 주택 난방에 대해선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과다한 난방을 하지 않도록 정부의 에너지 절약 지침을 따를 것을 권유하고 있다. 또 전기 절약을 위해 요금 구간을 둘로 나눠 기본 사용 범위까지만 ‘특별 인하 요금’을 적용하고, 이를 넘어가면 단위 사용량당 2~3배 비싼 고가 요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올겨울 ‘난방 온도 1도 낮추기’ ‘난방 시간 1시간 줄이기’ 등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시작했다. 스페인도 공공기관은 물론 쇼핑몰, 영화관, 호텔, 기차역, 공항 등 공공장소의 실내 온도를 겨울철에 19도보다 낮게 설정하도록 했다.

앞서 지난 7월 유럽연합(EU) 이사회는 회원 27국이 올겨울 자발적으로 천연가스 수요를 줄이는 데 합의했다. 나라별로 자율적 조치를 해 가을~겨울철 가스 소비량을 평년(지난 5년 평균)보다 15% 이상 줄이는 게 목표다. 천연가스 공급 상황이 악화하면 회원국 전체에 ‘연합 경보’를 발동, 가스 사용량을 강제로 줄이게 하는 조치도 할 수 있게 했다.

영국에서는 ‘순환 정전’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전력·가스 공급 업체 내셔널 그리드는 이날 “올겨울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 등 전력 피크타임에 최대 3시간씩 지역별로 전력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순환 정전의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유럽 대륙의 가스 부족이 심각해지면 영국도 연쇄적 영향을 받게 된다”며 “한파로 인한 전력 사용량 급증, 바람 부족으로 인한 풍력발전량 감소 등의 돌발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