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한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독일의 지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 급등해 70여 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을 억제했던 각종 부담 경감책이 8월 말 종결되면서 물가가 스프링처럼 튀어오른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에너지 가격을 다시 낮추기 위해 긴급 자금 28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독일 통계청은 지난 29일(현지 시각) “9월 소비자물가지수(속보치)가 1년 전보다 10.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1951년 12월 10.5% 이후 71년 만의 최고치다. 독일의 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8월까지 7%대 이하를 꾸준히 유지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보인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8~10%대를 기록했던 것과 대비됐다. 하지만 9월 들어 상황은 급반전했다. 독일 일간 디 차이트와 dpa 통신은 “정부가 6월부터 시행한 ‘9유로’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권과 유류세 인하 같은 가계 부담 경감 대책이 종료된 탓”이라고 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경우 9월이 되면서 대중교통 이용료는 217%, 각종 연료 가격이 12% 급등했다. 이런 폭등세가 물가 상승률을 약 1.3%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던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비용은 58%, 식료품 가격은 1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월이 되면 기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난방 수요가 크게 늘고 이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이 더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독일 정부는 부랴부랴 새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놨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지난 29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여파에 대응하는 경제적 방어 우산’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2000억유로(약 280조원) 규모의 기금을 추가 조성해 가스 가격 인하, 에너지 대량 사용 기업을 위한 신용 대출에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가스 가격을 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에 맞서 우리 경제를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재원은 신종 코로나 대유행 중에 기업 지원을 위해 조성한 경제안정펀드(WSF)를 이용한다고 크리스틴 린드너 재무장관은 밝혔다. 영국처럼 대규모 국채 발행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물가 상승에 매우 민감한 정책을 펼쳐왔다. 1차 대전 패전 이후인 1920년대에 물가가 무려 10억배가 오르는 초(超)인플레이션을 겪은 기억 때문이다.

일간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은 “유로화 통화정책을 책임진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한 금리 인상 압력도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ECB는 지난달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처음으로 0.75%의 금리를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고, 이달에도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