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 시각) 호주 시드니 타운홀에서 이란의 ‘히잡 의문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이 손을 맞잡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란 각지에서 불붙은 반정부 시위는 최근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 각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20대 여성이 경찰 조사 중 의문사하면서 촉발된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 시민의 연대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80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고, 정부의 강제 진압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상황이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25일(현지 시각) 이란 당국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고, 이란 내 반정부 시위에 연대를 표시하는 시위가 에펠탑이 마주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시위에는 인권 단체와 이란 출신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총 4000여 명이 참석했다.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22)의 사진을 든 시위대는 처음에는 평화적인 분위기로 집회를 이어갔다. 그러나 일부 참가자가 이란 정부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가 격렬해졌다. 이란 내 반정부 시위대 구호인 “여성, 생명, 자유”와 함께 “히잡에 죽음을” “독재자에게 죽음을” 같은 반정부 구호도 터져 나왔다.

시위대 일부는 인근 이란 대사관으로 행진하면서 프랑스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이란 대사관 주변에 설치된 차단선을 넘으려 시도했다”며 최루탄과 진압 장비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이 체포되고, 경찰관 한 명이 경상을 입었다. AFP통신은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프랑스 내 반이란 인권 단체들이 더욱 자극받았다”며 “앞으로 더 격렬한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런던 중심가 트래펄가 광장에도 이날 500여 명이 모여 이란 당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1979년 이란 혁명 이전의 국기를 흔들면서 “이슬람 공화국에 죽음을”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약 3㎞ 떨어진 하이드 파크 남쪽 주영 이란 대사관 앞으로 진출, 대사관을 경비하던 경찰과 충돌했다. 런던 경찰은 “대사관에서 물러난 시위대가 벽돌과 병 등을 던지면서 많은 경찰관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5명이 체포되고, 경찰 5명이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다. 영국 BBC는 “캐나다와 호주, 칠레, 이라크 등 세계 곳곳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 출신인 아미니는 이달 13일 테헤란에 왔다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경찰 조사 중 의식불명에 빠져 16일 숨졌다. 경찰은 심장마비라고 주장했으나, 머리를 맞아 숨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전국적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이란 정부는 이에 “관용 없이 단호한 조처를 하겠다”며 군과 경찰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고, 군의 발포로 40여 명이 숨졌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메신저 접속도 차단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비폭력 시위에 대한 광범위하고 과도한 무력 사용과 인터넷 접속 차단은 EU와 그 회원국 입장에서 정당화되거나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