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이용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국 화페인 페소보다 가상화폐가 경제 위기에 더 방어가 잘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22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데이터 회사 모닝 컨설트 자료를 인용해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상화폐 거래를 한다고 답한 사람이 아르헨티나 인구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 비율은 미국보다 2배가량 높다. 가상화폐로 월급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았다. 올해 1월 기준 아르헨티나 16~64세 인구 중 18.5%가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어 태국, 나이지리아 등에 이어 전 세계에서 여섯째로 많았다.

이 같은 현상은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과 관련이 깊다. 아르헨티나는 올해 물가 상승률이 9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마르코스 부스칼리아는 NYT에 “페소는 갖고 있으면 녹아내린다는 점에서 아이스크림 같다”고 했다. 여기에 현재 인플레이션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단순 외부 요인이 아니라 정부의 실책 때문이라는 불신이 커지면서 페소에 대한 신뢰가 더욱 떨어졌다.

정부가 지난 2019년 달러 환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불안한 경제 상황 때문에 페소를 달러로 환전해 보관하는 사람이 늘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한 달에 200달러만 매입 가능하도록 했고, 거래마다 물리는 수수료도 강화했다. 달러 연계 코인 환전소인 부엔비트 대표는 “달러 거래 관련 규제를 도입한 지 7개월 만에 이용자가 20만명이 늘었다”고 했다.

가상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안전 자산이 아니다. 비트코인의 경우 지난해 11월 6만5000달러(약 8740만원)에서 이달 2만4000달러(약 3228만원)선까지 떨어졌다. 페소 가치가 떨어진 것보다 2배가량 더 폭락했다. NYT는 그럼에도 많은 아르헨티나 이용자가 페소와 달리 가상화폐는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에게는 투기가 아니라 오히려 투자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안전 자산 확보인 셈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온 택시 기사 이스마엘 로요씨는 NYT에 “페소 가치가 떨어지는 걸 보면서 베네수엘라에서 겪었던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미국 등 화폐가치가 안정적인) 다른 나라에 살았다면 (가상화폐와 관련한) 이런 상황을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