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런팅' 논란으로 역풍을 맞고 있는 일본 사이바라 리에코(58)의 만화 ‘매일 엄마(毎日かあさん)’ 애니메이션 버전 포스터./TV도쿄

일본에서 육아를 주제로 15년간 연재한 인기 만화가 ‘셰어런팅(sharenting)’ 논란에 휘말렸다. 만화 주인공인 작가의 딸이 어릴 적 자기를 소재로 한 만화 내용 때문에 사생활이 공개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셰어런팅’은 ‘share(공유)’와 ‘parenting(양육)’을 합성한 말로, 부모가 어린 자녀와 보내는 일상을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논란 대상은 ‘매일 엄마(毎日かあさん)’라는 제목의 만화로, 마이니치신문에 2002~2017년 매주 한 차례 연재됐다. 작가 사이바라 리에코(58)는 아이 엄마이자 아내, 주부로서 지내는 삶을 소소한 일상 전달 방식으로 그려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에서 우수상도 받았다. 이 만화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한국어로 번역돼 2010년대 초 국내에서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6월 사이바라의 딸 가모시다 히요(22)가 “어린 시절 엄마가 원치 않았던 내 개인 정보를 공개하면서 나의 정신을 망가뜨렸다”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퍼지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그는 “(엄마는) 외모 콤플렉스와 관련된 이야기, 정신과 치료 병력 등 숨기고 싶었던 내 사생활을 허락도 없이 공개했다”며 “학교에서 늘 놀림받았고, 만화를 본 이상한 아저씨가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찾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왜 만화 연재가 끝나고 5년이 지나서야 피해를 주장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이제야 평범한 사람들처럼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재 당시엔 트라우마가 심해 피해 본 사실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단행본과 애니메이션, 실사(實寫) 영화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만화였기에 가모시다의 고백이 일으킨 충격은 컸다. 네티즌들은 “육아 콘텐츠가 아이를 희생한 결과물인 줄 몰랐다” “작가가 자녀 존엄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분노했다. 평소 소셜미디어에 육아 일상과 자녀 사진을 올리던 부모들의 활동 중단 사례도 속출했다. 아동 전문 변호사 다카시마 아쓰시는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는 만큼 자녀 개인 정보에 관한 논의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셰어런팅에 대한 경각심은 인터넷에 올린 자녀 사진이 도용당하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최근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네 살 딸을 키우는 정혜연(36)씨는 “카카오톡에 올렸던 아이 사진이 최근 모르는 커뮤니티에 올라가 악플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인터넷에서 아이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아동이 인터넷에 올라온 자신에 관한 글과 사진, 영상을 삭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2024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 각국은 셰어런팅 부작용을 방지할 법적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부모가 자녀 동의 없이 사진이나 영상 등을 올렸다가 이후 소송당하면 최고 징역 1년이나 4만5000유로(약 6000만원)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독일과 영국은 아동의 개인 정보 보호권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