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대거 격추해 '키이우의 유령'으로 불리던 우크라이나군 파일럿 스테판 타라발카(29) 소령./트위터

러시아 전투기 수십 대를 격추해 ‘키이우의 유령’이라고 불리며 우크라이나의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던 20대 공군 조종사가 한 달 반 전 사망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더타임스는 이날 우크라이나 소식통을 인용해 “스테판 타라발카(29) 소령이 지난 3월 13일 러시아 전투기들과의 공중전 도중 전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구소련제 MIG-29 전투기를 몰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타라발카 소령은 전사 후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공군은 공식적으로는 “전사한 타라발카 소령은 ‘키이우의 유령’이 아니다”라며 “키이우의 유령은 (여전히) 살아있고, 성공적으로 영공을 지키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쟁 영웅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에겐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전술로 해석됐다.

지난달 13일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대거 격추해 '키이우의 유령'으로 불리던 우크라이나군 파일럿 스테판 타라발카(29) 소령./트위터

‘키이우의 유령’은 이미 우크라이나의 전설로 자리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에 따르면 ‘키이우의 유령’이 지금까지 격추한 러시아 전투기는 40여 대에 달한다. 개전 이후 격추된 전체 러시아 전투기(189대)의 20% 이상을 키이우의 유령이 혼자 떨어뜨린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 홀로 러시아 전투기 6대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당시 키이우 유령의 전공(戰功)을 곡예 비행 영상과 함께 트위터에 올렸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열광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사람들은 그를 ‘키이우의 유령’이라 부른다”며 “우리 공군의 에이스는 수도와 국가 영공을 지키고, 러시아에는 악몽이 됐다”고 소개했다. 더타임스는 “‘키이우의 유령’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한번도 공식 확인을 해주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들은 ‘키이우의 유령’은 타라발카 소령이라고 기정사실처럼 보도했다. 타라발카 소령 사망 이틀 전에도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가 제트기 조종석에 앉아 사진을 찍은 모습이 우크라이나군 트위터에 올라왔다. 사진에는 러시아어로 “침략자들아, 너희 영혼을 가지러 왔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더타임스는 타라발카 소령이 쓰던 헬멧과 고글이 런던에서 경매에 부쳐질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3일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대거 격추해 '키이우의 유령'으로 불리던 우크라이나군 파일럿 스테판 타라발카(29) 소령./트위터

타라발카 소령에게는 아내와 8세 아들이 있다고 한다. 타라발카 소령의 어머니는 NPR과 가진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다”며 “비행 학교에 다니고 나서부터,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마을을 향해 비행할 때는 곡예 비행을 하듯 최대한 가깝게 비행기를 몰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란 걸 알아봤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인터뷰에서 “아들의 마지막 비행이나 죽음에 대해 따로 전달받은 것은 없다”며 “임무를 위해 비행에 나섰고, 임무를 마쳤고, 돌아오지 못했다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