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 관저 앞에서 15일(현지 시각) 시위대가 연료 부족과 식품 가격 상승을 초래한 경제 위기에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한 스리랑카에서 물가 상승과 식량·연료 등 필수품 부족으로 인해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스리랑카는 2019년 부활절 연쇄 폭발 테러와 코로나 유행,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까지 이어지면서 경제의 근간인 관광 산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자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던 물자 공급에도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됐다.

29일 알 자지라·인디언 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외화 부족으로 인해 정부가 석유를 구해오지 못하면서 스리랑카 전역에서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구하려던 주민들 사이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기름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던 노인 4명이 쓰러져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하자 22일 스리랑카 정부는 수백개의 국영 주유소에 군인들을 배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콜롬보에서 택시를 운행하는 후세인 모하메드는 인디언익스프레스에 “연료 가격 상승으로 많은 개인 버스들이 운행을 중단했고, 대중교통까지 운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했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의 한 가게 앞에서 25일(현지 시각) 시민들이 가스통을 세워둔 채 조리용 가스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종이와 잉크를 살 돈이 없어 학생들이 시험을 못 치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스리랑카 교육 당국은 지난 21일부터 서부 주에서 시행 예정이었던 학기말 시험을 무기한 연기했다. 서부 주 교육 당국은 “인쇄업자들이 종이와 잉크를 수입하기 위한 외화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주요 신문사들도 종이 부족으로 인쇄를 중단했다. 스리랑카 영자지 ‘아일랜드’와 싱할라어 자매지 ‘디바이나’는 인쇄판 발행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25일 알자지라는 전했다. 다른 주요 일간지들도 지난 5개월간 인쇄 비용이 30% 이상 치솟으면서 발행 면을 줄이고 있다.

경제난을 견디지 못하고 인도로 탈출하는 난민까지 늘고 있다. 지난 22일 인도 해안경비대는 남부 타밀나두주 해안에서 생후 4개월 된 아기를 포함해 스리랑카 난민 16명을 구조했다. 스리랑카에서 밀입국 선을 타고 인도로 들어온 스리랑카 난민은 “스리랑카에서는 직업을 구할 수 없다. 생필품은 암시장에서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살 여력이 없다”고 했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23일(현지 시각) 주민들이 빈 연료통을 들고 주유소 앞에 줄지어 있다. /AFP 연합뉴스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스리랑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영향력 확대 경쟁을 벌이던 인도도 지원에 나섰다. 인도는 지난 1월에 4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 계약 등으로 스리랑카를 지원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도 신용 한도 확대를 통해 10억 달러를 긴급 지원했다.

인도는 29일 스리랑카 북부 섬 3곳에 대규모 풍력 발전 단지를 건설하는 양해각서(MOU)에도 서명했다. 애초 중국이 이를 추진하다가 무산되자 인도가 자금을 조달해 해당 프로젝트를 대신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인도 매체 더 힌두는 “스리랑카가 1년 넘게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며 중국을 뒤로 미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치전훙 스리랑카 주재 중국 대사는 “이번 일은 잠재적인 외국인 투자자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줬다”고 이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