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으로 부터 핵전력 강화 지시를 듣고 있는 세르게이 쇼이구(오른쪽)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제라시모프 총참모장./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핵(核) 위협 카드까지 꺼내 들자 국제사회가 그 의도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상외로 거세게 항전하는 우크라이나의 사기를 꺾는 한편,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경제 제재에 나선 서방을 압박해 전쟁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려는 속셈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핵전력 강화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는 핵 전력을 운용하는 전략미사일군과 북해함대, 태평양 함대 등이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미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실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미 과학자 연맹의 핵 전문가인 한스 크리스텐슨은 지난 27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러시아 핵무기가 저장고에서 반출되고 실제 행동으로 준비하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푸틴의 언급은 미치광이의 벼랑 끝 전술이자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 조지타운대 매슈 크로니그 교수도 푸틴의 이번 핵 위협이 지난 2018년 북한 김정은 핵실험에 대해 “내 핵 버튼은 더 크고 강력하며 작동까지 한다”고 했던 트럼프의 위협과도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실제로 핵무기를 쓰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CNN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 ‘진공 폭탄’이라는 별명이 있는 열압력탄 발사대를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현존하는 폭탄 중 핵폭탄 다음으로 위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열압력탄은 폭발 시 높은 압력으로 건물에 숨은 사람들까지 모두 살상한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전문연구위원은 “체첸 전쟁에서 이미 대량 살상 위력을 보인 만큼, 키예프 시가전에서 사용되면 엄청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은 푸틴이 핵무기 이외에도 화학·생물학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러시아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32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CNN이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이는 대부분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며 “러시아가 준비된 병력의 3분의 2를 이미 투입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수도 키예프 등 주요 거점을 한 곳도 점령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전쟁 비용은 하루 200억달러(약 24조원)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10년간 막대한 전쟁 비용을 쏟아붓고도 병력 5만명을 잃은 채 철수해야 했던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악몽을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