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 폭격에 불타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외곽에 있는 군기지의 레이더와 장비들, 23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받은 문자메시지. /AP 연합, 트위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기 전날인 2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 정부군에게 의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친 러시아 반군 세력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이후 비슷한 문자메시지가 대량 발송된 바 있다.

돈바스 지역 소식을 영문으로 번역해 올리는 한 네티즌은 이날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53보병여단 소속 군인이 받은 문자메시지 사진을 올렸다. 문자에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여. 러시아군이 이미 돈바스 지역에 왔다.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담겼다. 54보병여단 소속 군인도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 파병 준비에 나섰다. 당신 생명을 살리고 지역을 떠날 시간은 아직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이 네티즌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개인 연락처를 아는 친 러시아 반군 세력이 우크라이나 군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비슷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것으로 보인다. 리암 콜린스 미 육군 대령은 지난 2018년 미 육군협회에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배워야 할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러시아 해커들이 우크라이나의 모든 네트워크에 침투한 것 같다”며 “이들은 휴대전화 통신망을 뚫고 병사 개개인에게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가족의 안전 여부를 묻는 표적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포격 이후 러시아 해커들은 병사들에게 ‘부패한 관료들을 위해 죽을 가치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콜린스 대령은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한 후 정보 운영 능력을 대부분 포기했지만 러시아는 1990년대 경제 불황에서 회복한 뒤 많은 투자를 했다”며 “러시아는 전술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의) 전쟁 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를 사용해 개별 군인, 지휘관, 그 가족들을 목표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도착한 문자메시지가 단순히 심리적인 교란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018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이 적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무서운 문자메시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매체는 “2014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군을 상대로 온갖 전자 전술과 사이버 전술을 반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며 “때로는 전자전, 사이버전, 정보작전, 포격 등을 한꺼번에 결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각)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군사 지역 인근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가 망가졌다. /AP 연합

매체는 콜린스 대령의 말을 인용해 “병사들이 ‘포위되어 버려졌다’는 문자를 받고, 몇 분 후 그들의 가족은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는다”며 “가족이 군인들에게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면 휴대전화 전파가 많이 사용된 지점에 (친 러시아 반군이) 포격을 가한다”고 했다. 콜린스 대령은 “따라서 전자전은 사이버전, 정보 작전, 포격과 결합해 유기적인 효과를 낸다”고 했다.

한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24일(현지시각) 체르노빌 원전 인근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일대를 점령하고 수도 키예프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군도 키예프를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전투 병력을 파견하지 않겠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몇 시간 안에 키예프가 함락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이유다.

25일 새벽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화상 연설을 통해 “우린 홀로 남겨져 나라를 지키고 있다”며 “러시아는 나를 ‘1번 타깃’으로, 내 가족을 ‘2번 타깃’으로 삼았지만 조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군인과 민간인 137명이 사망했으며 316명이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