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병원에서 여성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AFP 연합뉴스

지난 달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아프간의 의료 시스템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고 영국 더 타임즈가 지난 14일 보도했다. 여성의 의료 접근권을 제한하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과 재정난, 구호 단체의 지원 중단 등으로 아프간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성은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고 치료받을 수 없다는 이슬람 율법 탓에 아프간 여성들은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놓여있다. 아프간 제2도시인 칸다하르에서 차로 2시간 30여 분 떨어진 샤 왈리 코트에 위치한 적신월사(이슬람권의 국제 적십자사·Red Crescent Society) 병원의 유일한 여성 의사인 샤키바(25)는 매일 최대 40명의 여성 환자를 혼자 치료한다고 타임즈에 밝혔다. 한 환자는 “가족 내 여성들이 모두 샤키바에게 진찰을 받고 있는데, 여성 의사들이 없다면 아프간 여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매우 어려워 질 것”이라고 했다. 이 병원에서 산전·산후 관리를 담당하는 샤키바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 많다”며 산통을 겪는 여성들이 통증을 줄여준다는 미신 때문에 갓 벗긴 양가죽을 둘러싸고 온다던가, 먼지 덮인 간이 침대에서 간신히 아기를 낳는다고 했다.

문제는 적십자 등 구호 단체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런 병원들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타임즈는 칸다하르 전역에 있는 10개의 적신월사 병원이 모두 “막대한 재정 적자 속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아프간 내 약 2700여개 병원이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이달 내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실제로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지난 5월 “20년 동안 아프간은 의료 등 필수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국제 원조에 의존해왔다”며 “바이든의 아프간 철군 발표 이후 이런 지원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이미 많은 아프간 여성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질을 떨어뜨려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칸다하르의 한 병원 관계자는 “세이브더 칠드런,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 등 많은 인도주의 단체들이 (아프간에서) 활동을 중단하면서 지난 한 달 동안 중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재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요 의약품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타임즈에 밝혔다.

병원의 위기는 여성 뿐만 아니라 아프간 주민 다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타임즈는 아프간의 2700여개 병원 중 80%는 예방접종 등 기초 의료 서비스 뿐만 아니라 영양 공급까지 맡고 있다고 전했다. UN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의 영양실조 비율은 이미 2021년 예측치에 비해 약 16% 증가한 상황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아프간인들이 가장 위험한 시기를 맞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 아프간에 식량 공급이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