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7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친정부 시위 현장을 찾아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상파울루를 비롯한 브라질 주요 도시에서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AP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 시각)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브라질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장. 대형 스크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4)가 등장하자 행사장에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내년 10월 실시되는 브라질 대선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자유와 독립을 믿는 분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재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 보도했다.

브라질 CPAC은 미국의 ‘보수정치행동회의(CPAC)’를 본떠 브라질의 보수 진영이 만든 연례 정치 행사이다. 보우소나루의 셋째 아들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 하원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1박 2일 일정으로 열린 올해 행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비롯해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의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 제이슨 밀러 전 백악관 선임고문과 찰리 게로 미국보수연합(ACU) 부회장은 현지 행사장을 직접 찾았다. 게로 부회장은 환호하는 참석자들을 향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가진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전 세계는 여러분이 내년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똑똑히 지켜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진영이 남미의 대표적인 극우 포퓰리스트인 보우소나루 대통령 돕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보우소나루가 내년에 패할 경우, 미주 대륙에서 보수 진영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트럼프의 정치 기반도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지지 기반과 선거 전략이 비슷해 한쪽의 세력 강화 또는 약화가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FT는 “미국의 트럼프 추종자들은 브라질 대선을 전 세계 극우 이념 확산을 위한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장(戰場)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거리 메운 친정부 시위대 - 브라질 독립기념일인 7일(현지 시각)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이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의 중심지인 파울리스타 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하고 있다.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를 비롯해 주요 도시에서 친정부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나와‘브라질을 다시 위대하게’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진영과 보우소나루 측은 그동안 줄곧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8월 트럼프의 열렬 지지자인 마이크 린델 ‘마이필로’ 최고경영자가 개최한 행사에서도 보우소나루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브라질 대선은 (미국의 중간 선거 다음으로) 세계에서 둘째로 중요한 선거”라고 했다. 배넌은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와 여러 차례 만나 선거 전략에 대해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2월 배넌이 세계 극우 세력 통합을 위해 설립한 단체 ‘더 무브먼트’에서 에두아르두는 남미 대표를 맡고 있다.

트럼프 진영의 행보는 최근 브라질 대선 판세가 보우소나루에게 크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브라질 사회·정치·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대선 출마가 거의 확실시되는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6)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로 나타났다. 24%에 그친 보우소나루를 압도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무능과 백신 구매 과정에서 드러난 부패 등으로 보우소나루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브라질 의회엔 그에 대한 탄핵 요구서가 120건 넘게 쌓이는 등 정치권의 탄핵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궁지에 몰린 보우소나루는 트럼프의 선동 전략으로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그는 “좌파가 재집권하면 경제·사회 전반에 좌파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것”이라면서 핵심 지지층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농촌 지역 주민들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지지층들도 움직이고 있다. 브라질 독립기념일인 7일 브라질리아와 상파울루 등 각지에서는 대규모 친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브라질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외치며 보우소나루와 대립 중인 대법원을 향해 행진했다. 대법원은 최근 보우소나루를 가짜 뉴스 유포 행위 조사 대상에 올린 데 이어 연방 경찰을 동원해 대통령 측근을 체포하도록 했다. 보우소나루는 이날 헬기를 타고 시위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들의 적극 행동을 촉구했다. 브라질 언론은 “시위가 격화할 경우 지난 1월 미국 워싱턴DC에서 발생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과 비슷한 사건이 재연될 수 있었다”고 우려했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시위대가 전날 밤 경찰 저지선을 뚫었으나 목표로 삼았던 대법원 진입에는 실패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