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여성이 아이돌 그룹 엑소의 전 멤버인 크리스(우이판·吳亦凡)가 표지에 실린 연예잡지 등이 진열된 신문 가판대를 쳐다보고 있다. 베이징시 공안국은 전날 성명을 내고 중국계 캐나다인인 크리스를 강간죄로 형사구류하고 사건 수사 업무를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형사구류는 우리나라의 체포에 해당하는 인신 구속 조치다./AP연합뉴스

중국 시진핑 체제가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가운데 팬클럽이 새로운 집중 규제 대상이 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2일 중국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이 이달 초 아이돌 인터넷 팬클럽을 집중 단속해 15만 건 이상의 콘텐츠를 삭제하고, 4000여 개의 계정을 폐쇄하거나 일시 정지시켰다고 보도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아이돌 인기 순위를 매기는 플랫폼인 ‘스타 파워 랭킹 리스트’ 계정도 폐쇄됐다. 중국 방송 감독기관인 국가광전총국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다는 통지를 내렸다.

중국이 팬클럽을 규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인터넷 여론을 좌지우지하며 정부의 ‘여론 조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미 CNN 방송은 “중국 정부는 이들이 화제를 독점하며 정부 메시지를 가리는 현상을 우려해왔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수백만 명의 팬이 소속된 팬클럽이 조직적으로 반(反) 정부 여론을 펼칠 가능성을 염려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의 팬클럽들은 해외 아이돌의 콘텐츠를 보거나 구매하기 위해 단체로 인터넷 주소(IP) 우회를 하는 등 ‘일탈’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성폭행 스캔들에 휩싸인 엑소 출신 크리스(중국명 우이판·吳亦凡)/AP 연합뉴스

크리스 우 사건도 팬클럽 규제의 빌미가 됐다. 지난달 말 아이돌그룹 엑소(EXO)의 전 멤버인 크리스 우(본명 우이판)는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서 중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는 지난 5일 성명에서 “크리스 우 사건은 팬덤 문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연예 산업의 가파른 성장을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팬클럽에 대한 규제가 향후 중국 문화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CNN은 중국 정부가 정보기술(IT) 기업, 교육계에 ‘군기 잡기’에 이어 문화계를 새로운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11월 알리바바 산하 앤트 그룹의 상하이 증시와 홍콩증시 기업공개(IPO)를 불허한 것을 신호탄으로 거대 IT기업에 대한 규제를 크게 강화했다. 중국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디디추싱은 지난 6월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상장한 이후 중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3일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예체능 외 교과목을 가르치는 사업체 설립을 금지하고 기존 업체는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중국 아이돌 선발 리얼리티쇼 청춘유니3. /아이치이 유튜브 캡처

중국 정부가 예측 불가능하고 극단적인 규제를 잇따라 쏟아내면서 중국 사회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CMP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중국 관영 매체들은 자국 팬클럽에 대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자발적인 모임”이라고 치켜세웠는데 상황이 급변했다고 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앞으로 중국 팬클럽은 애국주의를 강조하거나 정부 메시지에 동조하는 경우에만 활동을 보장 받게 될 것”이란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