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삼성전자 물류창고 방화/트위터
13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동부 콰줄루나탈주의 항구도시 더반에 있는 삼성전자의 물류창고가 폭동에 의해 약탈당하고 방화 피해를 입었다/트위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폭동이 5일째로 접어들며 사망자 수가 72명으로 늘었다고 현지 경찰이 13일(현지 시각) 밝혔다. AFP통신은 숨진 사람들 대다수는 약탈 과정에서 압사했고, 일부는 총격과 자동현금인출기(ATM)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번 폭동은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던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수감되자 그의 지지자들이 반발해 지난 9일 시위를 벌인 것이 시발점이었다. 현재 시위는 폭동으로 번져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약탈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경찰은 13일 폭도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전국에서 최소 200여곳의 쇼핑몰이 약탈 피해를 입었고, 피해 규모가 20억 남아공란드(약 16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폭도들은 전자제품 등 고가 상품을 보관하고 있는 시설들을 표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13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폭도들이 한 상점에서 물건을 약탈해 달아나고 있다. 부패 혐의를 받던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이 최근 수감된 이후 남아공 각지에서 시작된 시위는 폭력 사태와 약탈로 확산하며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AFP연합뉴스

현지에 진출한 우리 IT 기업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13일 남아공 남동부 콰줄루나탈주의 항구도시 더반 인근에 있는 삼성전자 물류창고가 약탈과 방화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창고에는 삼성전자가 현지에 판매하는 전자제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창고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에 휩싸여 있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삼성전자 남아공 법인 관계자는 이날 현지 언론 테크센트럴에 “삼성전자 물류 창고와 여러 서비스센터들이 공격 받았다”고 밝히면서 “TV, 냉장고 등 전자 제품을 보관하고 있는 곳들”이라고 했다. 폭도들의 공격으로 인한 삼성전자 측 사상자는 없고, 구체적인 경제 피해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지난 12일에는 더반의 LG 전자 공장이 약탈당하고 생산 시설이 전소했다. 2011년 설립돼 약 100명이 근무하는 이 공장은 TV·모니터 등을 생산해왔다. LG전자는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수십억원 규모의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남아공 동남부 더반 산업단지에 위치한 LG전자 공장에 90여명의 불상자들이 침입해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트위터

남아공에 진출한 다른 해외 기업들도 피해를 입었다. 스캐너 등을 주력 생산하는 대만 정보통신기술 회사인 머스텍(Mustek)은 지난 12일 더반의 자사 사무실과 물류 창고가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머스텍 남아공 법인 관계자는 테크센트럴에 “점심에 폭도들이 몰려와 경비원을 공격하고 대문을 부수고 사무실에 침입했다”면서 “폭도들은 TV, 모니터, 노트북 등을 훔치고, 주차된 차량을 훼손했다”고 했다.

폭동이 격화되자 우리 교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주 주마 전 대통령 고향인 콰줄루나탈주에서 시작된 폭동이 남아공 최대 도시이자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요하네스버그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공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 3300여명 중 요하네스버그에만 절반 이상인 2200명이 거주하고 있다.

교민들이 운영하는 영세한 사업장도 폭도들의 표적이 됐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발공장과 인쇄공장이 이번 폭동으로 약탈이나 방화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남아공 한국 대사관은 교민들에게 “불필요한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1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중심 도시 요하네스버그 외곽 알렉산드라의 한 쇼핑센터 안에서 경찰이 약탈 용의자들을 체포해 감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폭동은 남아공의 경기 침체와 코로나 봉쇄령으로 커진 국민 불만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1분기 남아공 실업률은 32.6%고, 청년 실업률은 46.3%다. 남아공은 이달 들어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2만명 안팎에 이르고 있지만 국민 5900만명 중 한 차례라도 백신을 맞은 비율이 6.4%에 불과하다. 남아공 정부는 오후 9시∼오전 4시 사이 통행금지, 주류 판매 금지, 식당 내부 영업 금지 등 강도 높은 봉쇄 조치를 시행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폭동 진압을 위해 군인과 경찰을 주요 도심마다 배치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