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군이 1일(현지 시각) 올가을 북극에서 대대적 종합 군사 훈련을 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북방 함대 정예 전력 상당수가 참여할 예정이다. 북방 함대는 러시아 4대 함대 중 최강이다. ‘핵미사일 탑재 전략 핵추진 잠수함(SSBN)’ 등 30척 이상의 핵 잠수함을 거느리고 있다. 러시아 해군 사령부는 “향후 북극 내 군사적 준비 태세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누구에게도 북극 안보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2018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북극 합동 군사 훈련을 한 데 이어 내년 겨울에도 훈련을 할 예정이다. 지난 2월에는 핵폭탄 탑재가 가능한 B-1 폭격기 4대를 노르웨이에 처음으로 배치했고, 작년 9월엔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폭격기를 북극 하늘에 전개시켰다. 북극과 한참 떨어진 중국도 북극을 지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견제할 목적으로 북극 군사 정보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동토의 땅 북극에서 미·중·러 간 군사 패권 대결이 뜨거워지고 있다. 막대한 매장 자원 등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북극의 안보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강대국들 간 선점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미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는 “경제적 가치를 놓고 덴마크 등 유럽 연안국과 러시아가 겨루던 북극에 미·중의 군사 개입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며 “북극이 미·중·러 간 군사적 패권 다툼의 장이 되고 있다”고 했다.

북극 군비 경쟁의 포문을 연 것은 러시아다. 지난 3월 러시아는 북극해 종합 군사 훈련 ‘움카(북극곰)-2021’을 수행해 40가지가 넘는 특수 훈련을 수행했다. 병력 600여 명과 신식 전투기·잠수함 등 200여종의 군사 장비가 동원된 프로젝트로, 중국 신화통신은 “이처럼 고도화된 북극 군사 훈련은 소련 시절 이래 유례가 없었다”고 했다.

CNN에 따르면 지난 4월 러시아는 북극 한 지하 시설에서 핵추진 어뢰 ‘포세이돈2M39’를 시험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ICBM이 미국에 요격되기 쉬운 것과 달리, 핵추진 어뢰는 탐지가 어려워 미국의 해안 도시들을 무방비 상태로 초토화할 수 있는 무기다. CNN은 “미국을 겨냥한 게임 체인저”라고 했다.

러시아의 노골적 북극 팽창은 변화한 안보 환경 때문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강제 합병 이후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유럽과 미국을 동시에 근거리에서 겨냥할 수 있는 북반구 최단(最短) 항공 루트인 북극의 안보적 중요도가 급부상했다. 노르웨이 언론 바렌츠옵서버는 러시아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이 러시아 최북단 나구르스코예 공군 기지에 배치돼 투폴레프 Tu-22M3 전략폭격기에 실리면, 최대 3000㎞를 빠르게 날아가 북대서양 양쪽의 미국·유럽 전력을 무력화시켜 북반구 전력 균형을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도 북극 전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은 그린란드 북서부 툴레 기지 등 북극권에 10개의 군사 기지를 갖고 있는데, 작년 6월 최대 4개의 군사 기지를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지난 4월엔 노르웨이와 방위 협력 협정을 새로 체결해 노르웨이 내 비행장 3곳과 해군 기지 1곳에 자국 시설을 짓기로 했다.

중국은 2018년 국무원이 발표한 ‘북극 백서’에서 자국을 ‘근(近)북극 국가’라고 규정하며 북극에 대한 발언권을 키우고 있다. 2012년 이래 과학 탐사를 빙자해 거의 매년 쇄빙선을 북극에 보내 군사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2019년 5월 보고서에서 중국이 북극해에 핵 억지력을 위한 전략 잠수함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중·러의 북극 팽창에 덴마크·스웨덴 등 유럽 연안국들도 군사적 대비를 강화하고 있다. 덴마크 국방부는 지난 2월 북극권 자치령인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에 러시아군에 대항해 군사적인 감시 능력을 키우기 위해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일각에선 러시아에 맞서 나토에 가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중·러를 견제하는 일본도 작년 9월 북극해에서 처음으로 군사 훈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