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한 시민이 반중 시위를 벌이며 BNO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시위에서 한 시민은 "차라리 영국에 이민 가서 2등 시민이 되겠다"고 주장했다./DW


홍콩 자산운용사 세인트제임스플레이스의 투자 전문가 네일 젠슨은 최근 홍콩 고객 6명에게서 의뢰를 받아 영국 워릭셔주 너니턴 지역의 주택 매수를 진행 중이다. 그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과거에는 홍콩 부호들을 위해 영국 대도시의 고가 부동산을 매입했는데, 요즘은 영국 이민을 준비하는 평범한 홍콩 주민들을 위해 교외 지역의 주택을 사들인다”고 말했다. 런던 부동산 컨설팅사 벤햄앤드리브스 잠정 집계에 따르면, 작년 7 월부터 올해 4 월까지 홍콩 주민이 구매한 런던 부동산은 전년 동기 대비 144 % 늘어난 1932건이었다. 반면 지난 4월 홍콩에서 매물로 나온 주택 수는 2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홍콩 주민들의 대규모 영국 이민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월 영국 정부가 홍콩 주민에게 이민 특혜를 주겠다고 선언한 이후, ‘헥시트(HKexit·탈홍콩)’ 목적지가 영국이란 점이 실제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홍콩에서는 지난해 6월 홍콩 내 반중(反中) 행위를 처벌하는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해외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소지한 홍콩 주민들의 영국 이민 비자 신청은 2~3월 두 달 동안 3만4300건에 달했다. 이전 6개월간 신청 건수(7000건)의 5배다. BNO 여권은 1997년 홍콩 반환 전까지 영국이 홍콩 거주자들에게 발급한 특수 여권으로, 영국은 이 여권은 가진 사람에 대해 영국 이민 신청 자격을 부여했다.

홍콩인들의 해외 탈출은 작년 홍콩보안법 시행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19년 홍콩에서 6개월간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이어지자 중국은 지난해 홍콩 내 반중 세력을 감시·처벌하는 내용의 홍콩보안법을 제정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고, 영국 정부는 지난 1월 31일 BNO 여권 소지자들과 그 가족에게 5년간 영국 거주·취업을 허용하고, 그 이후에는 영주권·시민권 신청 권한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 BNO 여권 소지자는 6개월간 영국 체류만 가능했다. 홍콩에서 BNO 여권 소지자와 부양가족 등을 합하면 전체 인구의 72%(54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중국은 홍콩 주민들의 영국 이민에 제동을 걸 수단이 마땅치 않다. BNO 여권 소지자의 영국 이민 허용 여부는 전적으로 영국 측에 달려 있어 중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민을 막으려면 해외 출국을 원천 차단해야 하는데, 홍콩 주민들은 BNO 여권 외에도 홍콩특구 여권과 홍콩주민증을 갖고 있어 이 신분증으로 해외에 나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BNO 여권 소지자를 전수 파악해 이들의 출국을 금지하는 극단 조치를 내릴까 우려하고 있지만, 이럴 경우 홍콩에서 대규모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실제 시행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