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수도 키이우 서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마카리우가 우크라이나군에 탈환되고, 러시아군이 지금까지 장악한 유일한 주요 도시인 남부 헤르손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시작됐다. 헤르손 공항에선 러시아군이 헬기들을 빼낸 것이 위성사진으로도 확인됐다. 미 국방부는 이날 15만여 명에 달한 러시아 침략군의 전투력이 “90% 이하로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이 지난 2일 점령했다고 밝힌 남부 주요 도시 헤르손의 공항 활주로의 3월 16일과 21일 위성사진. 러시아군 헬리콥터들이 사라졌다./플래닛 랩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휘하는 러시아군 장성은 대략 20명. 이 중 5,6명이 이미 최전선에서 숨졌다. 러시아군 전사자는 1만 명선이고, 하루 1000명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한다. 지금 러시아군은 오직 민간인 대량 살상만 노리는 폭격과 포격만 광적으로 되풀이한다. 이를 놓고,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교착 상태(stalemate)에 빠졌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이자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석좌 교수는 최근 애틀랜틱 몬슬리 웹사이트 기고문에서 “공개된 데이터만 면밀히 검토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이기고 있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왜 ‘우크라이나군 승리’를 망설이나

서방의 많은 러시아군 전문가∙학자들은 애초 ‘러시아의 조기(早期) 승리’를 점쳤다. 그러다가 “러시아군이 초기 실수를 만회하고 점검하느라 공격을 멈췄고, 재결집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엔 “전투 교리(doctrine)대로 했으면 저렇게 헤매지 않았을 것”이라고 물러서더니, 이제는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러시아군이 숫적 우세를 누린다”고 말한다.

왜 이들은 실제 전황을 인정하기를 망설일까. 코언은 “이들 학자∙분석가의 분석에는 자신들이 잘 아는 러시아군∙전략이란 주제에 대한 보호 본능, 러시아군의 기술적 우위, 숫자, 전투 교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전쟁은 인적 자원에 의해 좌우되고, 특히 현대전은 기술과 규율이 강력한 부사관 집단이 주도한다. 이들이 군 장비∙무기의 정비와 보수를 확실히 하고, 분대 작전에서 지도력을 발휘한다. 코언은 “러시아 부사관 집단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약하고 부패했다”며 “능력있는 부사관 집단이 없으면, 아무리 기술적으로 정교한 무기 체계∙차량들이 그럴듯한 교리에 따라 배치돼도, 결국 파괴∙방치되고 병력은 매복을 받아 패배하거나 항복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서방 전문가 거의 없어

코언 교수는 “서방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전문가는 거의 없어, 2014년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군과 친(親)러 반군 세력에 빼앗긴 이래, 미국∙영국∙캐나다의 지원을 받아 개선된 정도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이겨야 한다는 동기(動機)가 훨씬 강하고, 경보병과 대전차무기∙포∙드론과 결합한 전술로 거점 도시들뿐 아니라 도시간 작전도 능숙하게 전개한다. 코언 교수는 “가용한 데이터만 봐도,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증거는 풍부하다”고 진단했다.

◇민간인 피해 이미지의 착시(錯視) 현상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박살난 아파트 단지와 병원, 학교와 비참한 민간인 희생 현장은 전쟁의 잔인성과 공포를 전달하지만, 전장(戰場)의 실제 현실은 반영하지 못한다. 러시아군의 최전선이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은 전황 지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도시의 90%가 러시아군 포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22일 시민들이 민간인 희생자들을 매장할 구덩이를 파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과의 교전이 치열한 곳이 붉은 색으로 표시되지만, 이는 러시아군이 장악했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군의 전투 방향을 의미할 뿐이다. 미 전쟁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는 “최전선은 1주일이 넘게 거의 변동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 “러시아군, 공세 종말점 도달했다”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러시아군 전사자 수는 7000~1만4000명으로 추정된다. 미 국방부는 대략 1만 명으로 발표했었다. 이밖에 최소 3만 명이 부상∙포로∙실종으로 전장(戰場)에서 사라졌다. 21일 한 러시아 매체는 “러시아군 전사자가 9861명”이라고 웹사이트에 게재했다가, 외부 해킹에 의한 것이라며 삭제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또 러시아군 전사자 부상자가 하루 1000명에 달한다고 본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러시아 침략군의 거의 15%가 사라졌다. 코언은 “이는 침략군의 전투 능력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숫자”라고 밝혔다.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을 지냈던 벤 하지스 예비역 준장과 네덜란드 국방대학원의 아이젠하워 석좌 교수인 줄리안 린들리-프렌치 교수는 지난 14일 서방 정보기관들이 광범위하게 열람한 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은 3월 15일이면 공격의 한계를 뜻하는 ‘공세 종말점(攻勢終末點∙culminating point of attack)’에 근접한다”고 분석했다. 탄약∙식량∙병력∙연료 등의 보급 문제, 방어 측의 완강한 저항, 병사들의 체력 소진∙피로감으로 인해 더 이상 공격이 힘들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의 전자전(電子戰) 부대는 우크라이나의 통신망도 마비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러시아의 통신 보안이 깨져 위치가 노출되고, 최전선에서 무리하게 진격 명령을 수행하다가 준장∙소장급 러시아 장성 6명이 전사했다.

◇러시아 군수품 수송 철로, 벨라루스 철도 직원들이 끊어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인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는 러시아가 장악한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를 잇는 철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동부와 벨라루스 접경 지역의 철로와 장비를 파괴하는 “전면적인 철로 전쟁”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 올렉산드르 카미신 우크라이나 철도청장은 지난 19일 커런트 타임스에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으나, 지금 이 순간 벨라루스 제2의 도시인 남부 호멜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잇는 철도는 파손됐다”고 밝히고 “벨라루스의 정직한 철도 직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2월24일 러시아 침공이래, 러시아 군수품의 상당 부분은 호멜~키이우 철도를 통해 들어왔다. 카미신 철도청장은 “가장 효율적인 수송 수단인 철도를 적의 후방에서 끊어, 전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1만5000명의 외국인 자원병뿐 아니라, 최고 성능의 대전차∙대공무기∙드론∙저격용 총과 같은 전쟁의 모든 도구들을 매일 수천 대씩 공급받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 국무부 고문을 지냈던 코언 교수는 “미 정보 당국은 러시아군의 작전∙배치 상황, 의도를 계속 감시해서 실시간으로 우크라이나군에게 전달한다”고 밝혔다.

◇“교착이란 표현은 전쟁의 동적(動的) 속성 가려”

코언 교수는 “‘교착’이란 말은 전쟁의 동적인 속성을 가린다”며 “이길수록 더 이길 확률이 높아지고,질수록 계속 지게 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재집결에 성공해 대규모 보급이 재개됐다는 공개된 자료는 없고. 오히려 반대다. 만약 우크라이나군이 계속해서 이긴다면, 러시아군의 붕괴∙대규모 탈영∙항복과 같은 보다 뚜렷한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푸틴은 ‘탈출구’가 필요하게 되면 알릴 것”이라며 “그때까지 서방은 계속 러시아 경제를 더욱 옥죄고, 전쟁을 호도하는 러시아 국내의 자유 언론 차단 장막을 뚫어 러시아군 피해 상황을 알리고, 전범재판소를 준비하고 러시아의 전쟁 범죄자들을 계속 호명하며 압박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