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미셸광장 5번지에 있는 유서 깊은 서점 지베르 죈이 문을 닫은 모습/손진석 특파원

지난 16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시내 노트르담대성당 남쪽 건너편의 생미셸 광장 5번지. 1886년 개업해 135년간 파리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서점 ‘지베르 죈(Gibert Jeune)’이 있던 자리지만 서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간판은 떼어져 사라졌고, 서점을 상징하던 노란색 차양만 남아 있었다.

길을 지나던 리샤르라는 50세 남성은 스마트폰을 꺼내 닫혀 있는 서점 내부를 찍었다. 그는 “꼬마였을 때 세상을 알게 해준 책들을 이곳에서 샀다”며 “헌책을 이곳에 팔고 용돈을 보태 새 책을 사던 그때가 그립다”고 했다.

2017년 지베르 죈의 생미셸 광장 5번지 매장 모습/RFI

지난달 지베르 죈의 파리 시내 14개 점포 중 생미셸 광장 주변의 4곳이 문을 닫았다. 가장 오랜 세월을 버텨낸 시내 중심부 점포들이 한꺼번에 역사 속으로 퇴장한 것이다. 직원 약 7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베르 죈은 중부 도시 생테티엔에 살던 고전문학 교사 조세프 지베르(1852~1915)가 1886년 파리로 상경해 생미셸 광장에 노점을 열고 책을 판 것이 효시다. 1888년 이 근처에서 중고 교과서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서점을 열었고, 마침 학교교육 의무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창업자 조세프 지베르/르몽드

지베르 죈은 생미셸 광장을 중심으로 하나둘 점포를 늘려가며 자생적으로 생긴 서점으로는 프랑스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1929년 창업주의 두 아들이 각자 ‘지베르 죈'과 ‘지베르 조세프'라는 서점을 따로 차려 분리했지만 파리 시민들은 자매 서점으로 받아들였고, 2017년 다시 합쳤다.

2차대전 당시 지베르 죈에서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선 파리 시민들/르몽드

지베르 죈이 태동한 생미셸 광장 인근이 파리의 대학가를 상징하는 라탱 지구(Quartier latin)라는 점에서 이 서점은 젊은이들을 위해 지성의 원천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를 얻었다.

센강 근처에 있는 라탱 지구는 17세기 당시 소르본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라틴어로 강의를 했다는 이유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청춘들이 토론을 벌이던 음식점·주점과 함께 지베르 죈은 하나의 문화 코드로 받아들여졌다. 라탱 지구는 1968년 학생운동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1958년 새 학기가 시작할 때 학생들이 지베르 조세프에서 책을 사서 나오는 모습/르몽드

이날 생미셸 광장 5번지의 문 닫은 지베르 죈 앞을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내부를 들여다봤다. 벽면에는 누군가 장미꽃 한 다발을 붙여놓고 ‘서점과 라탱 지구의 영혼이 이곳에서 저물었다’는 문구를 써놨다. 일간 르몽드는 “슬프게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고 했다.

문을 닫은 지베르 죈의 벽면에 누군가 꽃다발과 함께 아쉬움을 표시하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손진석 특파원

지베르 죈이 핵심 점포를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프랑스인들이 책을 아마존 등 온라인몰에서 주문해 배송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베르 죈 역시 온라인 주문을 받지만 아마존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도시 개발 업체 아퓌르에 따르면, 최근 20년 사이 라탱 지구에서 서점 숫자가 43% 줄었다. 생미셸 광장은 임차료가 비싼 곳이다. 그래서 지베르 죈이 태동한 곳인데도 파리 변두리와 지방의 매장을 남기고 이곳의 매장부터 정리했다. 코로나 사태도 경영난을 겪은 원인이 됐다. 생미셸 광장을 지나던 티모테라는 대학생은 “아마존이 우리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집어삼키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