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 양쪽 제방과 거의 평행에 가깝게 선체를 바로잡은 에버기븐호./AFP 연합뉴스

수에즈 운하를 지나다 좌초해 뱃길을 완전히 가로막았던 22만4000t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의 부양 작업이 성공해 선체가 물 위에 떠올랐다고 29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이 밝혔다. 지난 23일 뱃머리가 운하 가장자리에 처박히며 좌초한 지 6일 만이다. 에버기븐호는 일단 운하 중간에 있는 ‘그레이트 비터' 호수로 이동해 상태를 점검한 뒤, 당초 목적지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기븐호가 움직이면서 운하 양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박 수백 척도 운항 재개에 들어갔다.

29일 수에즈 운하를 막고있던 에버기븐호 부양작업이 이뤄지고있다. 수에즈운하당국은 29일 에버기븐호 부양에 성공했다고 밝혔다./트위터@IbrahemFthelbab

오사마 라비 SCA 청장은 이날 이집트 국영TV 인터뷰에서 “이날 초기 작업으로 (서쪽) 제방과 4m 거리에 있던 선미(船尾)가 102m까지 떨어졌고, 나중에 선수 부분도 처박힌 부분에서 빠져나오면서 배가 완전하게 물에 떴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컨테이너 1만8300개를 싣고 출항한 에버기븐호는 수에즈 운하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항해하던 중 뱃머리가 동쪽 제방에 파묻히며 좌초했다. 그 결과 선수(船首)는 동북쪽을 향하고, 선미는 남서쪽을 향하는 형태로 좌초해 길이 400m 선체가 폭 205m 운하의 통행을 가로막았다.

SCA와 선주인 일본의 쇼에이기센은 사고 직후 네덜란드 준설 업체 스미트 샐비지에 의뢰해 28일까지 뱃머리 주변 흙과 모래 2만7000t을 포클레인으로 준설했다. 파낸 깊이는 18m에 달했다. 에버기븐호 선체 무게를 줄이려 평형수 9000t을 밖으로 빼냈다. 그런 다음 이날 오전 수위가 높아지는 만조 때를 노려 모두 14척의 예인선을 동원해 선체 이동을 시도했다. 예인선 일부는 뱃머리의 왼쪽 방향에서 운하 가운데 쪽으로 끌어당겼고, 동시에 일부 예인선은 선미의 오른쪽에서 운하 가운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운하 동쪽 제방에 박혀 있던 뱃머리가 서서히 떠오르며 예인선이 끌어당기는 대로 운하 가운데를 향해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에버기븐호 선체가 움직이자 현장에서는 “배가 떠올랐다” “신은 위대하다”는 등 환호성이 터졌다. 주변 예인선들은 뱃고동을 울렸다.

선박 위치 정보 서비스인 베슬파인더로 본 에버기븐호 선체 모습.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베슬파인더

SCA 라비 청장은 방송에서 “일단 운하가 정상화되면 하루 24시간 운영해 대기 중인 선박들을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부터 소형 선박들은 에버기븐호 옆으로 통행을 시작했다. 대기 중이던 선박들이 모두 운하를 통과하려면 3~4일 정도 걸릴 것으로 SCA 측은 내다보고 있다. CNN은 운하 양쪽에 367척이 대기 중이라고 했다. 지난 27일에는 400척이 넘는 배가 기다리기도 했지만 이 중 일부는 운하 통과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로 떠났다.

/수에즈운하 관리청=AFP 연합뉴스

에버기븐호 좌초 사고로 글로벌 교역의 12%를 차지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길목인 수에즈 운하가 가로막히면서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집트는 하루 1400만달러(약 158억원)의 통행료 수입 손실을 입었다. SCA는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당초 에버기븐호 선원들은 강풍으로 인해 선체가 뜻대로 통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SCA 측은 항해 과정에서 일부 선원의 과실이 있었거나 운항 관련 기계 장치가 고장 났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벌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