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는 세계 각국의 스파이가 몰려든다. 지난 9월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일반총회가 열린 장면/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이 해외 간첩 활동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곳이 오스트리아 수도 빈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익명의 서방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경제 제재로 무역이 제한된 북한이 무기와 명품을 몰래 들여오는 통로가 빈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북한 국가보위성 소속 요원만 10명 가까이 빈에 상주하고 있다고 했다. 왜 빈이 북한 간첩 활동의 교두보가 됐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0년간 오스트리아는 연합군이 분할 통치했다. 이때부터 세계 각국의 스파이들이 빈에 몰려들어 정보를 캐내는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분할 통치가 끝난 1955년 오스트리아는 영세 중립국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냉전 시대에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제약 없이 빈에 정보 요원을 파견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리적으로도 동유럽과 서유럽이 만나는 접점이 빈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자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한 외국 스파이의 활동을 금지하지 않았다.

1982년 북한이 오스트리아 빈에 설립한 현지 은행인 금별은행이 있던 건물. 이 은행을 통해 무기, 명품 등을 들여오고 대금을 결제했다. 금별은행은 국제 사회의 압력을 받은 끝에 2004년 폐쇄됐다./위키피디아

빈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본부도 있다. 핵과 석유를 둘러싼 정보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IAEA와 OPEC은 중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국제기구들이다. 중동에서 국지전이 벌어져 스파이들이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면 대신 빈에 몰려들어 정보전을 이어갔다.

2014년 오스트리아 대테러기관인 BVT의 국장을 지낸 게르트 폴리는 “빈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는 통상 7000명에 달하며 민감한 이슈가 발생하면 숫자가 늘어난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의 교육·의료 서비스 수준이 높아서 가족과 함께 장기간 머물러야 하는 스파이들이 빈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빈에서의 첩보전을 그린 영화 '제3의 사나이'

빈을 배경으로 삼는 첩보 영화도 여럿 나왔다. 1949년 영국 영화 ‘제3의 사나이’는 연합군 분할 통치 시기의 첩보전을 그렸다. 1987년 개봉한 ’007 리빙데이라이트' 역시 냉전 시대 빈에서 벌어진 스파이들의 충돌을 담고 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빈을 해외 활동 전진기지로 삼았다. 북한이 대외 무역 결제를 위해 1978년 설립한 조선대성은행은 1982년 금별은행이라는 오스트리아 현지 자회사를 설립했다. 오랫동안 북한은 오스트리아를 통해 무기나 명품을 조달하고 금별은행 계좌로 물건값을 치렀다. 한때 납북된 영화감독 신상옥이 지목한 영화 장비나 김정은이 마시는 유럽산 와인도 오스트리아에서 평양으로 공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모시 덜튼이 제임스 본드역을 맡아 1987년 개봉한 007 리빙 데이라이트는 빈에서의 첩보전을 그렸다.

블룸버그는 2018년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갈 때 탄 케이블카도 오스트리아를 통해 들여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해외 식당 1호도 1986년 빈에 차린 평양식당이었다.

북한이 빈에서 폭넓은 활동을 벌인다는 사실을 노려 미국도 빈에서 북한을 상대로 첩보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미국 외교관이 빈주재 북한대사관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대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