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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청쿵(長江)그룹의 아파트 분양가 파격 할인 소식으로 이달 초부터 떠들썩합니다. 청쿵그룹은 홍콩 갑부 리카싱(李嘉誠)이 창업한 회사로 홍콩의 대표적인 부동산개발업체죠. 지하철로 한 역만 가면 홍콩섬에 닿는 주룽(九龍)반도 동부 야우퉁(油塘) 의 오션뷰 아파트로 위치나 교통이 모두 괜찮은데도 주변시세보다 30%나 싸게 판다고 합니다.

리카싱은 돈의 흐름을 미리 알려주는 ‘풍향계’로 통하는 인물이죠. 이번 분양가 파격 할인이 홍콩 부동산 침체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사정은 권력층과 부자들이 대거 홍콩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중국 대륙도 마찬가지예요. 웨이신과 웨이보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리카싱이 아파트 파격 할인에 나선 이유를 분석하는 글이 쏟아집니다.

홍콩은 2020년 보안법 파동으로 사실상 대륙에 통합된 이후 돈과 인구가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죠. 단순한 부동산 시장 침체를 넘어 아시아 금융 허브 지위 자체가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리카싱의 청쿵그룹이 아파트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인하했다는 소식을 전한 한 홍콩 일간지 기사. /am730

◇7년 전 시세로 파격 분양

청쿵그룹이 분양가 할인에 나선 곳은 주룽반도 동쪽 야우퉁의 신규 아파트 단지 ‘코스트 라인’ 2기입니다. 전용 면적 19.5~66.7㎡의 아파트 132가구를 분양했는데, 가장 싼 가구는 ㎡당 가격이 14만8700홍콩달러(약 2500만원) 수준이라고 해요. 이는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30% 저렴한 가격으로 7년 전 시세라고 합니다. 분양 시작 이틀 만에 5000명 이상이 청약을 했어요.

‘코스트 라인’은 야우퉁역까지 걸어서 8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으면서 해변에 인접한 곳입니다. 최고급 주택가는 아니지만, 위치나 교통이 괜찮다는 평가를 받아요. 청쿵그룹은 “박리다매를 통해 홍콩 시민의 거주 환경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청쿵실업이 분양가를 파격 할인해 내놓은 '코스트 라인' 2기 건설 부지. /Centaline Property

청쿵그룹이 분양가 할인에 나선 직접적인 이유로는 홍콩 부동산 시장 상황이 꼽혀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3년간 계속 상승세를 그려온 홍콩 주택 가격은 작년 말을 기준으로 2021년 말 대비 15.2% 하락했습니다. 주택 거래 건수도 39%나 줄었다고 해요. 시장 전반이 침체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선거에서 당선된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이 92만 가구의 대규모 공공주택 분양을 준비 중인 것도 부담됐던 것으로 보여요.

◇인구·돈 이탈에 불안한 금융허브

하지만 이런 시장 상황 이상의 다른 요인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잖습니다. 홍콩 부동산 시장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거품 붕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고 그룹 내 부동산 자산 비중을 줄이려는 의도라는 거죠.

그동안 홍콩 주택 시장을 떠받쳐온 가장 큰 요인은 인구였습니다. 몰려드는 인구에 비해 주택이 적어 가격이 올랐던 거죠. 이 인구가 2020년 홍콩 보안법 파동 이후 빠른 속도로 줄고 있습니다. 2019년 750만명이었던 홍콩 인구는 작년 730만명 선으로 3년 사이 20만명이 줄었어요. 보안법 도입으로 홍콩의 정치적 자유가 위축되자 영국, 싱가포르 등지에 대거 이민을 떠난 겁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돈도 빠져나가고 있어요. 작년 홍콩의 개인 예탁관리자산 규모는 8조9650억 홍콩달러로 2021년 대비 15%가 감소했습니다. 홍콩에 자산을 맡긴 개인은 홍콩 부자들이 전체의 47%를 차지하지만, 중국 대륙 출신도 16%나 돼요. 이렇게 빠져나간 돈이 싱가포르에 밀려든다고 합니다. 돈과 인구가 빠져나가면 홍콩 부동산 시장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겠죠. 청쿵그룹은 과거 그룹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0%에 이른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50% 아래로 떨어졌고 계속 그 비중을 낮추는 추세입니다. 올 3월 툰먼 지역 아파트 분양 때도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춘 적이 있다고 해요.

◇“홍콩달러 약세 내다보고 자산 처분 나섰나”

리카싱은 10년 앞을 내다보는 투자로 유명합니다. 리카싱은 중국 부동산 시장이 좋았던 2013년부터 4년간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대륙 주요 도시의 상업용 빌딩을 줄줄이 매각했어요. 총 매각 대금이 13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돈을 영국의 부동산과 통신기업 등에 투자했죠.

그 당시 고개를 갸우뚱했던 중국 대륙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요즘 빈사 상태에 몰려 있습니다. 헝다그룹에 이어 완다그룹, 비구이위안 등 중국을 대표하는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해 있죠.

리카싱이 단순히 부동산 자산 비중을 줄이는 차원이 아니라 홍콩자산 자체를 정리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홍콩달러로 보유한 자산을 줄이고 달러나 파운드 자산을 늘린다는 거죠.

홍콩 최대 갑부로 꼽히는 리카싱 청쿵그룹 창업자. /조선일보DB

홍콩의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를 지탱하는 중요한 제도 중 하나가 달러 페그제입니다. 1983년부터 1달러당 7.75~7.85 홍콩달러의 고정환율을 유지하고 있죠. 이렇게 환율이 안정돼야 투자에 따른 환율변동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페그제가 흔들릴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에요. 미국의 연쇄 금리 인상으로 홍콩 달러 가치가 계속 하락 압박을 받자 홍콩 정부는 보유 달러를 쏟아부어 겨우 페그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년 내 페그제에 균열이 생기고 홍콩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홍콩달러로 보유한 자산의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겠죠. 리카싱이 이런 상황을 미리 내다보고 홍콩 내 자산 정리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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