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새 군주로 대관식을 치르는 찰스 3세 국왕. /AFP=연합뉴스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찰스 3세(Charles III) 국왕의 대관식이 열린다. 이로써 그는 지난해 9월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뒤를 이어 ‘영(英)연방’ 국가들의 군주가 된다.

찰스 3세의 나이는 올해로 75세. 1958년 열 살 나이에 왕세자가 된 이래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위 계승 1순위’ 자리를 지켰다. 왕세자 시절 그는 영국 총리만 15차례, 미국 대통령은 14차례 교체되는 걸 지켜봤다.

◇불륜과 이혼, ‘비호감 왕세자’로 낙인

찰스 3세는 1948년 11월 14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공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 여왕이 즉위한 후 6년 만인 1958년 왕세자가 됐다. 1970년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하고, 공군과 해군에 복무했다.

그러나 찰스 3세의 가정사는 순탄치 않았다. 불륜과 이혼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1981년 다이애나비와 결혼해 왕자 윌리엄과 해리를 얻었지만, 1992년 별거를 시작해 1996년 이혼했다.

다이애나비는 BBC 인터뷰를 통해 남편의 불륜 사실을 폭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다이애나가 큰 인기를 누렸던 만큼 찰스는 범 국민적 지탄을 받았고, 호감도도 급락했다.

고(故) 다이애나비. /조선일보 DB

이후 찰스는 자신의 불륜 대상이었던 커밀라 파커 볼스와 2005년 재혼했다. 커밀라는 지난해 9월 찰스 3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으로 불렸다.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왕세자비를 뜻하는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Princess of Wales)’라고 불렸던 것과 대비된다. 영국 왕실은 이제 커밀라의 공식 호칭에 대해 ‘왕비 폐하(Her Majesty The Queen Consort)’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난달 5일 공개된 대관식 초청장에는 ‘Queen’이라고만 표기해 격을 더 높였다.

2018년 7월 영국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찰스 왕세자, 그의 부인 카밀라 여사,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메건 마클 왕손 부인, 해리 왕손(앞줄 왼쪽부터)이 영국 왕립 공군 창설 100주년 기념 비행을 지켜보기 위해 서 있다. /AFP 연합뉴스

◇영국 국민 64% “대관식 관심 없다”

찰스 3세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5일 BBC가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에 의뢰해 지난 4월 영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군주제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에 62%만 동의했다. 전체 응답자 64%는 대관식에 관심이 ‘거의 없다’ 또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51%는 대관식에 나랏돈(세금)이 지원되는 것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영국 국민의 군주제 지지율은 10년 전만 해도 75%에 육박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특히 18∼24세의 지지율은 36%로, 2015년(69%)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공화제를 지지하는 응답이 40%로 더 높다.

찰스 3세 국왕(왼쪽)과 카밀라 왕비(오른쪽). 지난달 4일 버킹엄궁에서 찍은 사진. /버킹엄궁

65세 이상의 79%가 여전히 군주제를 지지하는 것과 비교된다. 18~24세 젊은층의 지지율은 특히 2020년을 전후해 크게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왕자와 부인 매건 마클이 왕실과 결별 선언을 하고, 앤드루 왕자가 미성년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던 시기다.

다만 찰스 3세가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60%로, ‘잘 못하고 있다(14%)’의 4배를 넘어섰다.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인기가 떨어지지만, ‘지지율 과반’은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다는 평이다.

왕실 역사가 에바린 브루턴은 “여왕의 높았던 인기는 새로운 국왕에게 큰 부담이겠지만, 극복하지 못할 과제는 아니다”고 BBC에 말했다. 브루턴은 “지금은 마치 빅토리아 여왕 서거 후 1901년 에드워드 7세가 왕위를 잇던 상황과 비슷하다”며 “에드워드 7세도 영국 사회 변혁기에 즉위했고, 모친보다 인기가 없었지만, 좋은 국왕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그는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라는 훌륭한 롤모델이 있고, 즉위 전 64년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도 했다. 에드워드 7세는 영국과 프랑스가 1904년 체결했던 ‘평화 협정’의 주역으로, 외교에 탁월한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왕자(왼쪽)와 매건 마클(오른쪽)의 약혼 사진. 둘은 결혼과 함께 왕실과 결별 선언을 하며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켄싱턴궁

◇영연방의 도전, 찰스 3세의 응전

찰스 3세의 앞에는 무거운 과제가 놓여 있다. 과거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영연방의 강력한 구심점이 돼 왔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영국의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

일부 영연방 국가는 영국 및 왕실과 관계 재정립에도 나섰다. 카리브해 섬나라이자 과거 노예 무역의 중계지였던 바베이도스는 지난 2021년 독립한 지 55년만에 첫 대통령을 선출하고, 더 이상 여왕을 국가원수로 섬기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군주제에서 벗어나 공화제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자메이카, 바하마 등 다른 카리브해 국가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이들 국가를 방문했을 때 이들은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과 노예제 사과를 요구했다.

영연방을 구성하는 호주와 캐나다에서도 공화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높다. BBC는 “영연방 국가와의 관계를 보다 현대적으로 재정의하는 게 찰스 3세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찰스 3세는 대관식 전부터 영연방 국가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식민지 시절 과거사를 언급하고 과오를 인정하는 등 회원국들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엔 과거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행해졌던 노예무역과 왕실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를 지지하고, 왕실 자료를 제한 없이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노예무역은 영국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왕실이 여기에 개입해 이득을 취했다는 비판도 있다. 왕실은 이에 그간의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공식적 사과는 피해왔다.

지난해 6월엔 왕세자 신분으로 영연방 수반회의에 참석해 “우리(영연방)의 뿌리가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식민 지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