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싱가포르달러(약 98만원) 넘게 준다고요? 그러면 당연히 한국에서 일해보고 싶죠.”

29일 오후 싱가포르의 한 가사도우미 소개소 입구에서 만난 미얀마인 아웅쑤저(32)씨는 “26살 때 월급이 450싱가포르달러(약 44만원)였는데 이제 경력이 인정돼 800싱가포르달러(78만원)를 받는다”고 했다. 미얀마의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고학력 신입 사원 월급이 30만원 안팎이다.

23일 오후 싱가포르 ‘부킷티마 쇼핑센터’에 있는 한 가사도우미 소개소에서 동남아 출신 여성들이 가사도우미로 구직하기 위해 서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표태준 특파원

일하는 여성이 늘며 육아 문제 해결이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에선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문을 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은 내국인과 중국 거주 한국 동포에게만 가사도우미 취업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급여 차별 등을 이유로 반대 여론이 일어 본격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만난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아웅쑤저씨는 “싱가포르에 그렇게 많은 월급을 받는 가사도우미는 드물어, 한국에 문이 열린다면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가사도우미 소개소 30여 개가 밀집한 ‘부킷티마 쇼핑센터’에서 만난 이들도 반응이 비슷했다. 월 800싱가포르달러를 받는다는 필리핀인 제니 아바디아노(30)씨는 “대학 나와 필리핀에서 일하는 친구들보다 내가 2배 가까이 번다”며 “한국이 개방될 가능성이 있다면 한국 요리 공부 시작해야겠다”며 웃었다. 앤절라 모레나(30·필리핀)씨는 “한국에서 가사도우미로 일을 잘해 계약을 마치고 다른 직업도 구할 기회를 주면 가보고 싶다”고 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1970년대 여성 사회 진출 독려, 저출산 대책 등의 취지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했다. 전체 가구(약 140만 가구) 중 5분의 1이 외국인 가사도우미(약 26만명)를 고용하고 있을 정도로 제도가 일반화돼 있다. 최저임금 제도가 없는 싱가포르는 이들의 월 급여를 각 국가와 협상해 정하는데, 약 40만~6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가사도우미 고용주는 매달 정부에 300싱가포르달러(약 29만원)의 고용부담금을 낸다. 싱가포르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싱가포르인 월평균 급여는 약 496만원으로, 맞벌이 부부의 경우 소득의 10분의 1 정도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1인당 GNP(국민총생산)는 지난 2021년 기준 6만4010달러로 한국 3만5110달러의 약 1.8배이지만, 가사도우미의 실질 급여는 훨씬 낮은 셈이다.

여성이 맘 편히 일할 환경이 조성되면서 1990년 45%로 한국(47%)보다 낮았던 싱가포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올라 2021년 64%로 높아졌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54%)은 1993년 싱가포르에 추월당하고 나서 횡보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문을 여는 추세다. 약 39만명의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체류 중인 홍콩은 이들이 일할 기회를 늘리기 위해 홍콩 국민과 다른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홍콩 국민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시급 약 6200원)을 적용받지 않고, 월 77만원 이상만 받으면 되도록 정해져 있다. 대만 역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에게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화 등으로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여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한편 싱가포르에서 가사도우미 소개소를 운영하는 김경철(65)씨는 “싱가포르식 가사도우미가 한국에 도입되려면 외국인 도우미에 대한 배려, 숙식 문제 해결 등을 해결할 방안을 정부가 먼저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