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엔지니어로 비틀스의 ‘렛 잇 비’ ‘애비 로드’, 핑크 플로이드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등 역사적 앨범 제작에 참여한 앨런 파슨스는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로 작곡을 하고 기타·키보드를 연주했지만 노래는 코러스를 제외하면 부르지 않았다. /앨런 파슨스 공식 홈페이지

가을이다. 11월이 깊어져간다. 이쯤 되면 꺼내 들어야 할 목소리가 몇 있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가 그중 하나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밴드다. 프로그레시브 록과 세련된 팝을 오가면서 히트곡을 여럿 남겼다. 음반마다 콘셉트를 달리하는 방식을 통해 1970년대에 활짝 꽃핀 앨범 미학을 구체화한 밴드이기도 하다. 시대에 연결된 채로 그 시대를 딱 반 보 정도 절묘하게 앞섰던 음악, 이게 바로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성공 비결이었다.

작은 역설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목소리에 반해 음악을 즐겨 들었다면 거기에 정작 앨런 파슨스의 목소리는 없다는 것이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정규 멤버는 총 2명이었다. 앨런 파슨스, 에릭 울프슨. 둘 중 앨런 파슨스는 밴드의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였다. 작곡을 하는 동시에 기타도 쳤고, 키보드를 연주했다. 노래는 코러스로 참여한 ‘타임(Time·1980년)’을 제외하면 한 톨도 부르지 않았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두 정규 멤버인 파슨스와 에릭 울프슨(왼쪽). 울프슨은 제작·작사·작곡·보컬·키보드와 매니저 역할을 겸했다. /앨런 파슨스 공식 홈페이지

노래는 에릭 울프슨이 몇몇 곡에서 불렀다. 우리는 ‘타임’ ‘돈 앤서 미(Don’t Answer Me·1983년)’, 무엇보다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1982년)’ 등의 곡에서 에릭 울프슨의 가창을 들을 수 있다. 이 외의 곡들, 예를 들어 밴드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올드 앤드 와이즈(Old and Wise·1982년)’는 콜린 블런스턴이 녹음한 곡이다. 콜린 블런스턴은 ‘타임 오브 더 시즌(Time of the Season·1968년)’이라는 명곡을 남긴 좀비스(The Zombies)의 보컬리스트다.

이름을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로 한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당시 앨런 파슨스가 적어도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매니저이기도 했던 에릭 울프슨은 앨런 파슨스가 지닌 기왕의 명성을 활용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고 밝혔다.

앨런 파슨스는 원래 엔지니어였다. 그것도 매우 뛰어난 엔지니어로 인정받으면서 역사에 남을 걸작 탄생에 일조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0순위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1973년)’과 비틀스의 ‘애비 로드(Abbey Road·1969년)’ ‘렛 잇 비(Let It Be·1970년)’가 그것이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으로 그래미상 후보까지 오른 앨런 파슨스는 “직접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에릭 울프슨과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를 결성한다.

한데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탄생에 결정적 영감을 제공한 건 음악이 아닌, 영화였다. 영화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위대한 감독이 영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서 에릭 울프슨은 다음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영화가 앨프리드 히치콕이나 스탠리 큐브릭 같은 감독의 예술이라면 음악은 프로듀서의 예술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게 바로 소수 곡을 제외하고 그들이 만든 음악의 보컬을 따로 기용한 이유였다. 음악에서 보컬이 영화 속 배우의 역할과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가 함께 작업한 게스트 보컬은 20명에 육박한다. 요컨대 1990년대 한국에서 토이나 공일오비가 추구한 형식적 실험에 아론의 지팡이가 되어준 셈이다.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곡 하나만 꼽으라면 ‘아이 인 더 스카이’를 택할 수밖에 없다. 음반 타이틀이기도 한 이 곡은 1번 트랙인 ‘시리우스(Sirius)’와 함께 듣도록 설계되어 있다. 앞서 강조한 앨범 미학이다. 그러나 배철수의 음악 캠프 정도를 제외하면 2번에 위치한 ‘아이 인 더 스카이’만 따로 선곡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대로 ‘시리우스’만 취급하는 곳도 있다. 미국 NBA의 시카고 불스다. 전설 마이클 조던의 신인 시절부터 시카고 불스는 선수 입장 테마로 이 곡을 써왔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곡해받아온 노래이기도 하다. 제목부터가 ‘창공의 눈’인 까닭에 뭔가 종교적 색채를 담아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신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똑바로 살아라”쯤 되는 느낌이랄까. 반면 해외에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관련 있을 거라는 추측이 대세였다. 앨런 파슨스는 “대중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 브러더에 대한 노래인 건 맞는다”고 밝혔다.

계기는 도리어 카지노였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앨런 파슨스와 에릭 울프슨은 갬블러에 관한 서사시를 기획 중이었다. 이를 위해 에릭 울프슨은 카지노에 가서 갬블러라는 직업을 직접 탐구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빛을 본 작품이 1980년의 ‘더 턴 오브 어 프렌들리 카드(The Turn of a Friendly Card)’다. ‘유리한 패(A Friendly Card)’로 일발 역전을 꿈꾸는 갬블러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요약하면 인생은 로또 같은 게 아니라는 거다. 뭐, 우리가 이 정도도 모르고 로또를 매주 구입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에릭 울프슨을 매혹한 건 갬블러의 삶만이 아니었다. 도박장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탄생 비화다. 가사는 기실 이별 노래에 가깝다. 마치 감시 카메라처럼 “당신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다”는 거다. 에릭 울프슨은 이 곡에서 거짓을 일삼는 상대에게 감정의 동절기가 왔음을 차분한 어조로 먼저 선포한다. 이후 아득해질 만큼 절정에 올랐다가 썰물처럼 서서히 물러나는 만듦새로 결코 잊히지 않을 멜로디를 길어낸다.

마지막으로 커버에 새겨진 눈 모양 상형문자를 언급해야 한다. 고대 이집트 신 호루스(Horus)의 눈이다. 전설에 따르면 호루스의 눈은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제목 그대로 ‘아이 인 더 스카이’다. 어쩐지. 이 곡을 감상할 때마다 뭔가 등골이 서늘해지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