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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전~국 노래자랑. 일요일의 남자 송해, 인사 올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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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안 된 이별은 더 큰 슬픔을 동반한다. 이제 다시 일요일에 그를 만날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결국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이별하게 됐다. 방송인 송해가 8일 눈을 감았다. 향년 9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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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별세했다. 현역 최고령 방송인으로 '원조 국민 MC'이자 '한국 대중문화계 역사의 산증인'인 그의 비보가 전해지자, 국민 모두 슬픔에 빠졌다.

본지 역시 애도하며 고인이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본다. 삶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라는 말이 있는 만큼, 수많은 미디어에서 송해의 인생을 많이 다뤘다. 이에 따르면, 송해는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49년에는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공부했다. 당시 성악을 익혀 순회 악단에서 가수를 했는데, 악단 공연 특성상 진행하면서 입담으로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경험이 자연스럽게 훗날 '전국노래자랑' MC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송해의 삶은 주체적이었다. 6.25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연평도에서 힘들게 탑승했던 미 군함에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 본명은 송복희지만,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너온 자신에게 바다 해(海)자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월남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1955년 '창공악근단'에 입단했다. TV 방송이 활발해지면서,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송해하면 가장 먼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가 떠오르지만, 사실 그가 데뷔 신고식을 치른 동아방송 '스무고개'에서는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다. 이밖에 앨범을 여러 장 발매하기도 했고, 투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각종 영화에 출연한 이력도 있다. 대한민국 대중문화계 진정한 만능엔터테이너로 활약해왔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송해 앞에는 '최장수'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온다. 그는 동양방송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도 17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했다. 그만둔 배경도 아들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충격에 빠져, MC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의 성실성과 프로페셔널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전국노래자랑' 이력은 송해의 삶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과 약 35년을 함께 해왔다. 1994년 몸이 좋지 않아 6개월 잠시 프로그램을 중단한 것을 빼놓고, 대부분 녹화에 참여했다. 고령에도 매니저 없이 대중교통만 이용하면서 '전국노래자랑'을 이어온 것도 그의 근면 성실함을 뒷받침해주는 이야기다.

이는 기록으로도 증명됐다. 1988년부터 2022년까지 MC로 활약한 근거로, 송해는 지난 4월 현역 MC로 '최고령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보관문화훈장, 2015년 은관문화훈장 등 다양한 수상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오랜 시간 '전국노래자랑'을 책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인품도 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출연자들과 훈훈하게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출연자가 싸 온 음식을 복스럽게 먹는 등 넘치는 정을 자랑했다. 이른바 괴짜 출연자가 나와도 관록이 묻어내는 진행으로 대응, 진정한 '일요일 남자'로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일요일의 송해'는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야외 녹화가 중단된 이후의 이별이라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에서 생애 마지막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는 고인의 소망도 결국 이뤄지지 못해, 안타까움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잠시 먼저 가 있는 것일 뿐, 영원한 이별은 아니다." 송해가 2018년 아내 석옥이 여사의 장례를 마친 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우리 곁을 먼저 떠나 참담한 마음이 커지지만 참아본다. 그의 말처럼 영원한 이별은 아니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