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국계 미국 감독 정이삭 감독의 독립영화 '미나리'가 내년 열리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앞서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불리는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로 배제돼 논란이 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각)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내년 2월 28일 개최 예정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미나리'가 작품상 후보로 오르지 못하고 대신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해 파장을 일으켰다.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 HFPA)에서 주최하고 매년 미국 LA에서 개최되는 시상식이다. 한 해 공개된 영화와 드라마에서 최고의 작품, 배우를 선정해 시상하는 권위의 시상식이다.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한 달 앞서 개최돼 '오스카 전초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지난해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기생충'(봉중호 감독)이 한국 영화 100년 역사 최초로 외국어 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부문의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기생충'의 수상 결과를 두고도 잡음이 나왔다.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과 감독상 수상 불발을 두고 '인종 차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실제로 그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수상자 중 유색인종은 봉준호 감독과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부문)을 수상한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이민자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콰피나가 전부였던 것.

논란을 의식한 듯 이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4개 부분을 수상,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한국인이 최고의 영예를 휩쓸었다.

이렇듯 할리우드 신드롬을 일으킨 '기생충'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기생충'을 이을 작품으로 '미나리'가 거론되며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었지만 골든글로브가 또 다시 '인종 차별' 구설을 만들어 아시아계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정한 규칙인 대사 50% 이상 영어로 이뤄진 작품만이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며 작품상 후보로 '미나리'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 아칸소주(州)의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을 주축으로 국내 배우인 한예리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여기에 '명품 배우' 윤여정이 가세했고 더불어 윌 패튼,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등이 출연, 주요 출연진이 한국계 배우로 이뤄진 작품이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냈다.

'미나리'는 한예리와 윤여정을 제외한 모두 미국 국적을 가졌고 투자 역시 '문라이트'(17, 배리 젠킨스 감독) '플로리다 프로젝트'(18, 션 베이커 감독) '유전'(18, 아리 에스터 감독) 등을 만든 A24가 맡았다. 또 '노예 12년'(14, 스티브 맥퀸 감독) '월드워Z'(13, 마크 포스터 감독) '옥자'(17, 봉준호 감독) 등을 제작한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 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했다. 이렇듯 미국 스태프, 미국 배우가 참여한, 누가봐도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미국 영화지만 영화 속 주 언어가 한국어로 사용됐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어 영화로 간주돼 골든글로브에서는 외면을 받게 됐다.

버라이어티는 "'미나리'는 미국으로 이민 온 가족이 언어 및 문화적 장벽과 싸우면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 어떤 작품보다 미국적일 수 없다"고 골든글로브를 비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골든글로브에서 '미나리'와 같은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서 탈락한 '페어웰'의 룰루 왕 감독은 SNS를 통해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다. 미국인은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규칙을 바꿔야 한다"며 꼬집었다. '김씨네 편의점'으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앤드루 풍은 "미국에서 촬영하고 미국인이 출연하고 미국인이 연출하고 미국 회사가 제작한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영화가 외국 영화라고 슬프고 실망스럽게 상기시킨다"고 비난했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지 페이스트의 기자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09,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어 대사 비중이 영화 전체에서 30%도 안 되는데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고 골든글로브의 이중적인 기준에 일침을 가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