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설립된 영국 수소 항공기 업체 제로에비아는 지난달 중순 19인승 항공기를 10분간 상공에 띄우는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일반 여객기에 비해서는 작지만 수소 연료 전지로 비행한 항공기로는 최대 규모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일반 엔진을 장착했지만 실제 비행에선 사용하지 않고 활주와 이륙, 착륙까지 모든 과정을 마쳤다. 시험 비행 후 기자회견에서 발 미프타코프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7개 항공기 제조업체와 협력하고 있고 아메리칸항공 등으로부터 선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회사는 2025년 19인승 항공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40~80인승, 90인승 항공기 등으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자동차에 이어 비행기에서도 수소·전기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작년 10월 세계 193국이 모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2050년 탄소 제로(0)’ 계획을 발표하고, 노르웨이가 2040년까지 모든 단거리 국내선을 완전 전기로 바꾸겠다고 밝히는 등 무공해 항공을 위한 시장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수소·전기 비행기 개발에 뛰어든 업체들도 최근 들어 속속 시험 비행 성공 소식을 전하고 있다. 반면 친환경 항공기가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거리 비행에 쓰이려면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이란 회의론도 적지 않다.

스웨덴 스타트업 하트 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 중인 30인승 전기 비행기 ES-30 예상 모습(위쪽). 이스라엘 스타트업 에비에이션이 만든 9인승 여객기 앨리스는 작년 9월 8분간의 첫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고(가운데),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는 2035년 상용화를 목표로 수소 비행기를 연구하고 있다(아래쪽). /하트 에어로스페이스·에비에이션·에어버스

◇단거리 시장 뛰어든 전기 비행기

전기 비행기의 경우 이미 1·2인승 경비행기에선 상용화가 이뤄진 상태다. 유럽 전기 항공기 제조업체 피피스트렐은 2020년 만든 2인승 경비행기 ‘벨리스 일렉트로’를 현재까지 100대가량 팔았다. 대당 17만5500달러(약 2억2000만원)로, 한 번 충전으로 50분 정도 비행할 수 있다. 고객사인 스웨덴 조종사 훈련 업체 ‘그린 플라이트 아카데미’ 관계자는 CNN에 “한 번 비행에 연료비가 2~3달러밖에 들지 않아 기존 항공유(45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했다. 소음이 적어 인근 주민 항의에서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다.

이보다 규모가 큰 소형 전기 비행기는 개발 또는 시험 비행 단계다. 작년 9월에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에비에이션이 9인승 여객기 ‘앨리스’를 미국 워싱턴주 그랜트 카운티 국제공항에서 8분간 시험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전기차에 쓰이는 배터리 기술과 비슷한 방식으로, 회사 측은 463km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5년까지 미국 연방항공청(FAA) 인증을 받고 1~2년간의 테스트를 거쳐 2027년까지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단거리 노선이 주력인 미국 항공사 케이프에어가 75대를 선주문했고, 물류 업체 DHL과 전세기 업체 글로벌X 등도 구매에 나섰다.

이 밖에 스웨덴 스타트업 하트 에어로스페이스, 미국 스타트업 라이트 일렉트릭 등도 전기 비행기를 개발하고 있다. 다만 이들 업체 대부분은 소형이나 단거리용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의 배터리 기술로는 무게 제한 때문에 많은 승객을 태우고 긴 거리를 운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트 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19인승을 순수 전기 비행기로 개발하다가 작년 이 계획을 포기하고 주력 모델을 일반 엔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30인승 비행기로 바꿨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순수 전기만으론 200km, 하이브리드로 전환하면 400km를 비행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바로 착륙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반드시 필요한 예비 연료를 고려하면 운항 가능 거리가 회사들의 주장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본다. 테크 전문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현재 스타트업들이 목표로 하는 단거리 노선 비행조차도 실제로 가능해지려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단위 무게나 부피당 에너지양)가 기본적으로 두 배로 높아져야 하고, 항공 업계의 탈탄소화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4배는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어버스 “2035년 수소비행기 상용화”

전기 비행기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수소 항공기로 눈길을 돌리는 곳도 있다. 수소를 연소하거나 전기로 변환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밀도가 배터리보다 높아 같은 무게라도 더 긴 거리를 운행할 수 있다. 유럽 저가 항공사 이지젯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데이비드 모건은 작년 11월 롤스로이스와 함께 수소 엔진 지상 시험 성공 소식을 전하며 “배터리 기술도 살펴봤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대형 상업용 항공기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수소 항공기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곳 중 하나는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다. 2035년까지 수소 항공기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수소엔진 방식과 수소연료전지 방식을 모두 연구하고 있다. 글렌 르웰린 에어버스 부사장은 작년 11월 열린 ‘에어버스 서밋’에서 “수소연료전지의 경우 기술 목표를 달성한다면 100명 승객을 태우고 1850km 정도를 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형 여객기 A380을 개조해 2026년쯤 시험 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프랑스 툴루즈-블라냑 공항에 액체 수소 급유 시설을 지어 2025년부터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다만 수소 비행기 역시 갈 길이 멀다. 수소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항공기에 쓰려면 영하 253도 미만 극저온 상태로 냉각해 액화 수소로 저장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액화 수소는 관련 기술 미비와 비용 문제로 수소차 분야에서도 아직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구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실장은 “수소 자체는 일반 항공유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수소 저장 탱크나 연료전지 시스템 무게 등을 고려하면 좀 더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소 탱크나 동력 장치를 넣기 위해선 비행기 구조 변경이 필요하고, 수소 생산과 충전 인프라 구축도 초기 단계다. 유럽운송환경연합의 항공 분야 담당자인 조 다르덴은 “앞으로 30년 안에 전기나 수소 비행기로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선 배터리와 수소에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 발전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폐식용유나 해조류, 사탕수수 등을 활용해 만드는 연료로, 생산 과정을 고려하면 탄소 배출을 화석연료 대비 80%까지 줄일 수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지난 2016년 SAF를 정기 운항에 사용하기 시작하는 등 이미 항공업계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유럽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SAF 혼합 사용을 의무화하기로 했고, 미국 역시 작년 SAF 생산과 사용을 늘리기 위한 로드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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