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이달 1일 자사 첫 장거리 전기 트럭 모델인 ‘세미’를 고객사인 식음료 회사 펩시코에 인도했다. 지난 2017년 개발 소식을 전한 지 5년 만으로, 승용차를 넘어 상용차 시장에 공식적으로 진출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앞서 세미가 8만1000파운드(약 37t) 무게로 500마일(약 800km) 주행을 완료했다”고 했다. 한번 충전으로 서울~부산을 왕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테슬라는 2024년 5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테슬라 전기트럭 ‘세미’. /테슬라 제공

전 세계적으로 내연기관 차량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고, 주요 기업들이 탄소 배출 줄이기에 나서면서 전기 상용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대형 유통 기업들은 앞다퉈 배달용 차량을 전기 밴으로 교체 중이고, 주요 상용차 제조 업체들은 소형 트럭을 넘어 중·대형 트럭까지 전동화(電動化)하고 있다.

유럽 상용차 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트럭②과 볼보트럭④도 대형 전기트럭 모델을 출시했다. 월마트③와 아마존, 페덱스 같은 유통·운송 업체들은 고객 배송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내연기관 차량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면서 상용차 시장에서도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트럭·월마트·볼보트럭


◇대형 트럭도 전기차로

최근 전기차 도입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소형 화물용 밴이다. GM 같은 전통 자동차 업체부터 리비안 등 신생 기업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비교적 주행거리가 짧고 도심 충전 인프라를 이용하기 쉽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마존은 지난 7월부터 리비안이 만든 전기 배송 차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기준 1000대 이상의 전기 배송차를 운행 중으로, 2030년까지 1만대의 전기차를 배치하는 게 목표다. 월마트도 지난 7월 전기차 업체 카누와 배달용 전기밴 4500대를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월마트는 “이번 계약이 204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0)를 달성하려는 우리 목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물류 업체 페덱스도 지난 6월부터 GM의 전기 상용차 부문 자회사 브라이트드롭에서 생산한 전기 밴을 운용하고 있다. 2040년까지 모든 소포 픽업·배달 차량을 전기차로 바꿀 예정이다. 브라이트드롭의 트래비스 카츠 CEO는 “페덱스뿐 아니라 월마트와 버라이즌 등 대형 업체로부터 2만5000건의 예약을 받았다”며 “(연료 비용을 고려하면) 유사한 내연기관 차량보다 전기 밴이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긴 주행거리와 강한 힘이 필요해 전동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대형 트럭 분야에서도 전기차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기준 중·대형 트럭은 전체 차량의 10% 정도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28%에 달해 운송 부문 탄소 중립을 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꼽힌다. 지난 2019년부터 전기 트럭을 만들기 시작한 볼보트럭은 지난 9월 총중량 44t인 대형 트럭 3종을 본격적으로 양산한다고 밝혔다. 차량별로 한 번 충전으로 300~380km를 운행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내년 출시 예정이다. 볼보트럭은 “2030년까지 전 세계 볼보트럭 판매의 절반 이상을 전기 트럭으로 달성하겠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벤츠트럭 역시 지난 9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상용차 전시회에서 장거리용 대형 전기 트럭 ‘e악트로스롱하울’을 공개했다. 2023년 하반기 출시, 2024년 양산이 목표다. 1회 충전 시 500km를 달릴 수 있어, 작년 10월 양산을 시작한 모델(300~400km)보다 주행거리가 개선됐다. 폭스바겐그룹 산하의 만트럭도 장거리 대형 전기 트럭 모델인 ‘e트럭’을 공개하고 2024년 양산 계획을 밝혔다.

업계에선 각국의 환경 규제가 강해지고 있는 만큼 전기 상용차 수요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유럽연합(EU)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고, 영국 역시 내연기관 트럭 판매를 2040년부터 금지할 계획을 밝혔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지난달 “내년 안에 대형 트럭 등에 적용될 더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 규정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지난 8월 발표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호재다. 이 법은 상업용 친환경 차량에 최대 4만달러(약 5200만원)의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디젤 가격이 급등하면서 비용 면에서도 경쟁력이 생겼다. 블룸버그는 “5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경유 값을 감안하면, 차량 가격이 디젤차의 두 배인 전기 트럭이 전체 비용 면에서는 더 저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터리 한계 극복이 과제

하지만 장거리 대형 트럭에선 아직 전기차의 한계가 뚜렷한 편이다. 많은 짐을 싣고 하루 수백 km를 이동하는 특성상 대형 트럭은 넉넉한 적재 용량과 장거리 운행 능력이 필수다. 대형 디젤 트럭은 한번 주유하면 짐을 싣고 1000~1500km를 주행할 수 있다. 반면 전기 트럭은 주행 거리를 늘리기 위해 배터리를 많이 달수록 적재 용량이 줄고 차량 가격이 비싸진다. 로이터는 “테슬라는 세미가 한번 충전으로 800km 주행을 완료했다고 했지만 화물을 뺀 세미 자체의 무게가 얼마인지는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업계 전문가들은 전기 트럭이 무거운 짐을 장거리로 운반하는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짧은 시간에 주유가 가능한 내연기관 트럭과 달리 충전하는 데 보통 1시간 이상 걸리는 것도 부담이다. 현재 양산되는 대형 전기 트럭 가운데 ‘볼보 FM 일렉트릭(총중량 44톤)’은 250kW 급속 충전기 이용 시 80% 충전까지 1시간 30분이 걸린다. 테슬라는 전기 트럭 세미를 30분 안에 70%까지 충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1MW급의 초고속 전용 충전기가 필요하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전압을 높여 충전 시간을 빠르게 할 수 있지만 배터리 수명이 줄어들 수 있고, 충전소 비용과 전력 손실량 때문에 충전 가격도 비싸진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 퓨얼셀'.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상대적으로 주행 거리가 길고 충전 시간이 짧지만, 충전소 건설 비용이 비싸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다. /현대자동차

이런 점 때문에 장거리 상용차 시장에서는 수소차(수소 연료 전지차)가 승리를 거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차량과 연료 가격부터 충전소 구축·운영 비용까지 전기차보다 더 비싸지만, 일반적으론 같은 무게에서 주행거리가 더 길고 충전 속도도 전기차보다 빠른 장점이 있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수소 트럭 모델인 엑시언트 퓨얼셀(총중량 28t)은 30분 이내로 완충할 수 있고, 한번 충전하면 570km 주행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로 누가 장거리 상용차 시장의 승자가 될지 섣불리 점칠 수 없는 상황이라 업체들도 양면 전략을 쓰고 있다. 볼보트럭과 다임러트럭은 지난해 합작회사를 만들어 1000km 주행이 가능한 수소트럭을 개발하고 있고, 만트럭도 2024년 시범 운행을 목표로 수소트럭을 연구 중이다. 만트럭의 알렉산더 블라스캄프 CEO는 “우리는 배터리 전기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대안으로 수소 연료 전지차 역시 연구하고 있다”며 “다만 2030년이 훨씬 지나야 수소 인프라가 충분하게 갖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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