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합리적 소비자라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남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백화점 특설 매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옷을 고르는 광경을 보다가 왠지 나도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아 물건을 사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반대로 특정 브랜드나 디자인의 옷이 마음에 들어도 주변에서 너무 흔하면 구매 욕구가 떨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수요에 내 수요가 좌우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그런데 네트워크 효과는 제품이나 상황에 따라 판이하게 나타난다. 네트워크 효과가 양(+)으로 작용할 때, 즉 남들이 사면 나도 사고 싶어질 때 이를 밴드웨건 효과라고 한다. 꽤 오래 전에 고등학생들 사이에 대유행하며 ‘등골 브레이커’라는 명성을 얻었던 모 브랜드 패딩은 밴드웨건 효과의 위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메신저나 소셜미디어 역시 밴드웨건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산업이다.

반대로 네트워크 효과가 음(-)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물건은 가치 없게 느껴져 안 사게 되는 현상이다. 이를 스놉(snob·속물) 효과라고 한다. 명품 업체들이 재고가 남아도 세일을 하지 않고 전량 폐기 처분하는 것도 제품의 희소성을 유지해 스놉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2018년 8월 13일 자 뉴욕포스트 1면에 실린 수프림 로고. 1달러짜리 신문 23만부가 순식간에 팔린 뒤 중고 사이트에서 10~20달러에 거래됐다. /뉴욕포스트

일반 기업들도 수량이 제한된 한정판 제품을 통해 스놉 효과를 노린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유명 예술가와 합작해 종종 한정판을 출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이키나 삼성전자, 아모레퍼시픽 같은 기업들도 유명인이나 디자이너와 협력한 한정판 제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미국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수프림도 아이템당 몇 백 개만 만드는 한정판 전략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8년엔 뉴욕포스트 1면에 수프림 로고를 싣자 삽시간에 신문이 가판대에서 동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그림이나 동영상을 디지털화한 NFT(대체 불가능 토큰)가 한때 열풍을 일으킨 것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디지털 원본’이라는 점을 내세워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스놉 효과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제품의 품질과 희소성, 충성 고객이 뒷받침돼야만 한다. 약 20년 전 우리나라의 어느 장사꾼은 달랑 6년 된 시계를 200년 된 유럽 왕실의 명품으로 둔갑시킨 뒤 연예인 협찬과 “이거 우리나라에 단 두 개밖에 없는 시계예요”같은 얄팍한 PPL을 앞세워 팔아 먹으려다 발각돼 쇠고랑을 찼다. 최근엔 멕시코의 한 사업가가 유명 화가 프리다 칼로의 1000만달러짜리 그림을 대중 앞에서 불태우는 무모한 짓을 벌였다. 자신이 만들어 파는 한정판 NFT의 희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쇼였다. 하지만 NFT는 거의 팔리지 않았고, 이 사업가는 문화재를 훼손한 혐의로 경찰 수사까지 받는다고 한다. 대중의 속물근성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속물근성이 도를 넘으면 오히려 화를 부르는 법이다.

한 멕시코 사업가가 자신이 만든 NFT를 홍보하기 위해 멕시코 국민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칵테일 위에 올린 뒤 불태우고 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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