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조모(29)씨는 지난달 점심 예약을 위해 회사 근처 식당에 전화했다가 순간 당황했다. 수화기 너머로 직원 목소리가 아닌 인공지능(AI) 로봇 음성이 들렸기 때문이다. 이 로봇은 문의 내용을 듣더니 원하는 시간과 인원을 묻고는 “그 시간에는 예약이 다 찼다”며 가까운 다른 시간을 추천해줬다. 조씨는 “일반 직원을 통해 예약하는 것과 비슷했다”며 “식당에서 로봇이 서빙을 하는 모습은 종종 봤는데 이제는 예약까지 받는다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기반의 콜봇(음성봇) 시장이 커지고 있다. 콜봇은 미리 녹음된 음성 안내만 가능한 ARS(자동응답시스템)에서 좀 더 진화한 형태다. 상대방의 말을 인식해 의도를 분석하고 대화하듯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국내에선 올해 들어 금융권 콜센터는 물론 식당, 미용실 같은 소상공인 업종으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24시간 응대가 가능하고 상담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기 편리한 데다,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말로 대화할 수 있어 문자로 입력하는 챗봇보다 접근성·편리성도 좋은 편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직원이 ‘AI 통화 비서’가 대신 받아 메모해둔 예약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KT

외식업체 CJ푸드빌은 올 1월 음성봇 서비스를 도입해 현재 빕스, 더플레이스, 제일제면소 등 36개 매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위치나 주차장 정보 같은 문의부터 식당 예약 같은 좀 더 복잡한 문의도 처리할 수 있다. AI가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판단하면 바로 매장 직원에게 연결해준다. CJ푸드빌 관계자는 “현재 매장으로 걸려오는 전화의 70%가량을 AI가 응대하고 있다”며 “바쁜 시간대에 매장에서 고객 전화를 놓치는 일이 확연히 줄었고 직원들 근무 피로도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고객 상담 전화가 많은 금융권도 음성봇 도입에 적극적이다. KB국민은행은 올 초 콜봇 서비스를 도입한 이후 통장 분실 신고, 대출 연체 관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고객 전화를 받아 콜봇이 처리하는 건수는 일 평균 2만5000건 정도다. 하나은행 역시 지난 5월 대출 신청 같은 업무를 도와주는 AI 콜봇 서비스를 시작했다. 재작년 5월 AI 음성봇 쏠리를 도입한 신한은행의 경우 서비스를 고도화해 현재는 영업점 위치 같은 기본 안내 외에도 “A지점에 상담 예약을 잡고 싶다” “계좌 거래 내역을 이메일로 보내달라” 등 400여 종의 업무·상담 처리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통신 업계는 ‘미래 먹거리’ 차원에서 관련 상품을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그동안 대규모 자체 콜센터를 운영하며 빅데이터를 쌓아온만큼 기술을 개발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KT가 작년 10월 내놓은 소상공인용 음성봇 ‘AI 통화비서’는 현재 3만곳 넘는 매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구탕집은 “포장 주문이 많았는데 AI 통화비서가 도와줘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고 했고, 광주의 한 미용실은 “기존에 쓰던 네이버 예약 기능에다 전화로도 예약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매출이 늘었다”고 전했다. LG유플러스도 다음 달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음성봇 서비스 ‘AI 가게 매니저’를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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