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연주

중국 윈난(雲南)성의 외딴 농장부터 마천루가 즐비한 호주 시드니 해변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 다양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만큼이나 소비자의 취향도 각양각색이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관심 갖는 주제가 있다. 바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아태 지역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업들이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베인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태 지역 소비자 10명 중 9명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우리 몸에 더 건강한 재료를 쓴 제품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8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지속 가능한 제품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고 했고, 심지어 10명 중 1명은 “기존 가격 대비 50% 더 비싼 제품에도 돈을 쓰겠다”고 했다. 이 조사 결과만 보면 어느 기업이라도 당장 ‘지속 가능성’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기업 브랜드 담당자들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 상당수 소비자가 말과 행동에 괴리(say-do gap)를 보인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 소비자 중 54%가 지속 가능성을 상위 5대 핵심 구매 기준으로 꼽지만, 정작 포장 식품 시장에서 이를 고려한 제품의 점유율은 12%에 불과하다. 베트남에서도 소비자 41%가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말했지만, 관련 상품의 점유율은 3%밖에 안 된다. 싱가포르 같은 성숙한 시장에서도 이 비율은 각각 23%와 14%로 꽤 차이가 난다.

뒤집어 보면,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 사이 간극을 좁혀줄 제품과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지속 가능성’ 꼬리표를 붙인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는 기업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소비자 15%는 지속 가능한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로 ‘정보 부족’을 꼽았고, 6%는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 주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속 가능성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각이 국가별로 큰 차이가 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한 재료’는 중국보다 일본과 한국의 소비자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천연 재료’는 태국보다 베트남과 필리핀에서 더 중요한 구매 고려 사항이다. 일본 소비자는 인도나 태국 소비자보다 무화학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일부 발 빠른 기업들은 이런 사실들에 기반해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가령 프랑스 대형 유제품 기업 다농은 비즈니스 전략과 브랜드에 지속 가능성을 포함하고 2025년까지 식물 기반 사업을 3배로 늘리며, 사업의 70%를 재생 농업으로 전환한다는 구체적 목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의 유아용 조제분유 브랜드인 SGM은 5세 미만 어린이의 37%가 발육 부진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바로잡는다는 목표로 인도네시아 정부, 비정부 기구, 의료 전문가 및 매점 운영자와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기업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다. 지속 가능성을 가욋일로 여기면, 그 브랜드는 대체로 실패하게 된다. 마케팅 기획부터, 투자, 조직 구조 등 전사적 관점에서 행동 경로를 설계하고, ESG 전략과 일치하는 새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이 쉽게 느껴진다면 무언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크다. CEO는 이 어려운 과정을 이끄는 실무진에 힘을 실어주고, 격려하고, 또한 동기부여를 통해 브랜드에 뚜렷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강지철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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