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슈퍼카 업체 페라리는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바꿔 2025년 첫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전시장에서 공개된 람보르기니 ‘우라칸 LP 610-4 스파이더’. /김연정 객원기자

슈퍼카 업체 페라리의 최고경영자(CEO)는 2016년 “페라리의 매력은 요란한 엔진 소리다. 전기로 움직이는 페라리는 절대 생산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페라리가 지난달 전기차와 하이브리드(휘발유 또는 디젤 엔진과 전기 모터 등 2개의 동력원을 함께 사용하는 차) 비중을 대폭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고, 2026년까지 전체 생산 차량 가운데 60%를 하이브리드 혹은 전기차로 채운다는 내용이다. 영화 007시리즈의 ‘본드카’로 유명한 영국의 슈퍼카 업체 애스턴마틴은 2025년 내연기관차 생산을 끝내고 2026년부터는 전기자동차 업체로 변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스포츠카의 대명사 람보르기니도 내연기관 차량만을 생산하는 현재의 체제를 올해로 끝내기로 했다. 2024년까지 15억 유로(약 2조500억원)를 투입해 2020년대 후반 첫 순수 전기차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내연기관의 마지막 수호자’를 자처했던 유명 슈퍼카 업체들이 하나둘씩 ‘굉음’을 포기하고, ‘친환경’ 전기차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슈퍼카는 내연기관 엔진에서 나오는 굉음과 시속 400㎞에 이르는 속도가 매력이다. 반면 전기차는 엔진 없이 모터로 직접 구동하기 때문에 소리가 없고, 아직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슈퍼카 업체들이 전기차 개발에 나서는 것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추세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총량으로 관리하면서, 이를 초과할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 특히 슈퍼카를 찾는 소비자 나이는 갈수록 낮아지는데, 이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스테판 윙클만 람보르니기 CEO는 “상대적으로 어린 가상화폐 신흥부자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가 증가했는데, 지속가능성(기후변화 대응)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우리 제품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슈퍼카의 핵심 경쟁력인 급가속 능력에서 내연기관이 전기차에 밀린다는 점도 슈퍼카 업체들이 전기차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는 통상 제로백(시속 0㎞에서 100㎞로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대인데, 일반 내연기관 차량은 5초 넘게 걸린다”며 “전기차 제작 기술이 자동차 업체의 미래 생존력을 보여주는 척도로 간주되고 있는 점도 슈퍼카 업체가 전기차 생산에 뛰어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물론 뒤늦게 전기차 경쟁에 뛰어든 슈퍼카 업체들이 전기차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독일 자동차 회사 오펠의 카를 토마스 노이만 전 사장은 뉴욕타임스에 “단순히 전기차를 만들고 그 위에 페라리 로고를 붙인다고 전기슈퍼카가 제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며 “현재 슈퍼카 업체들이 전기차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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