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미 연방대법원이 임신 24주 전까지는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자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낙태 반대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24주 이전까지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판례를 뒤집으며 미국 사회가 대혼돈에 빠진 가운데 미국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낙태권 관련 복지 제도를 내놓고 있다. 낙태가 불법인 주(州)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낙태를 희망할 경우, 낙태가 합법인 주로 이동해 수술을 받는 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부 기업은 낙태권을 옹호하는 진영과 폭 넓게 연대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원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직원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미국 내 기업은 이미 수십 곳에 이른다. 애플·아마존·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골드만삭스·JP모건·씨티그룹·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월가(街) 금융회사들, 타깃·크로거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이다. 지원금은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백달러에서 최대 4000~5000달러에 이른다.

수술비 지원 외에 추가적인 지원책을 내놓은 기업들도 있다. 구글은 낙태 금지 주에서 일하는 직원이 원할 경우 근무지를 옮겨주는 제도를 마련했고, 패션업체 파타고니아는 낙태 찬성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된 직원들의 보석금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차량호출업체 리프트·우버는 낙태 수술을 돕는 운전기사에게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텍사스의 낙태 금지법을 비판하며 “피소된 운전기사들의 소송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낙태가 금지된 13개 주 중 한 곳인 아칸소에 본사가 있는 월마트를 비롯해 코카콜라, 맥도날드, GM, 매리어트 등 일부 기업은 아직 낙태권 찬성이나 낙태 비용 지원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지 매체들은 S&P500 지수에 속하는 대형 기업 대부분이 결국 낙태 지원 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낙태권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것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를 중심으로 기업이 민감한 사회문제에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최근 아마존 직원들은 경영진에 “낙태 희망 직원을 위한 원격근무를 확대하고, 직원들의 항의 의사 표시를 위한 장소·시간을 제공하며, 회사 차원의 항의 집회를 개최하라”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낙태금지법에 따른 사업상 리스크 등을 조사·연구할 것을 요청하는 주주 제안서도 빗발치고 있다. 또 미국 소비자들이 동성애 지지 관련 행사에 기부하지 않은 기업 명단을 돌리며 불매 운동을 벌인 사례에서 보듯 낙태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간 자칫 ‘비호감’ 기업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하지만 낙태권을 적극 옹호하는 것도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 가령, 낙태 금지 주들이 원정 수술 지원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을 제정할 경우 기업들이 줄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의료법 전문가인 일리노이대 로빈 프렛웰 윌슨 교수는 “딸을 데리고 주 경계선을 넘은 부모를 (낙태 금지법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다면 아마존 같은 기업도 얼마든지 고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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