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동쪽에 있는 뤼 다브론 거리. 큰 도로들이 겹치는 분기점으로 교통 소음이 유난히 커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한 곳이다. 지난 2월 이 거리 가로등 기둥에 독특한 형태의 장비가 설치됐다. 길게 뻗어 있는 직육면체 몸통에 카메라 세 대와 마이크 여덟 개가 설치된 이 장치는 ‘하이드라 사운드 레이더’라 불리는 소음 탐지기다. 근처를 오가는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일정 수준 이상 소음을 발생시키면 차량의 번호판을 판독한다. 파리 시 당국은 올해 시범 운용 기간을 거친 뒤 내년부터 소음을 발생시킨 운전자에게 최대 135유로(약 18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파리 외에도 니스, 툴루즈 등 7개 도시가 같은 기능의 소음 탐지기를 설치해 민폐 차량 단속에 나섰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 설치된 소음 탐지 단속기 ‘하이드라 사운드 레이더’. 3대의 특수 카메라와 8개의 마이크가 설치돼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을 발생시키는 차량과 오토바이 번호판을 판독한다. /로이터

소음 탐지기 이외에도 파리는 소음 공해를 줄이기 위한 규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작년 8월 30일부터 외곽순환도로와 일부 초대형 도로를 제외한 파리 시내 주행속도 제한을 시속 50㎞에서 30㎞로 낮췄고, 올해 1월부터는 기존 무료였던 오토바이 주차 요금을 신설해 시간당 최대 3유로(약 4000원) 정도의 주차비를 받는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파리 시 당국은 2026년까지 도시 내 각종 교통 소음과 생활 소음을 37% 줄일 계획이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가 소음 공해와 전쟁에 나선 것은 그 피해가 묵과할 수 없을 만큼 막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가소음위원회(CNB)에 따르면, 소음 공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연간 최대 1470억유로(약 196조원), 소음의 영향을 받는 국민은 2500만명에 달한다. 심지어 43만2000명은 소음 때문에 진정제를 복용한다. 다비드 벨리아르 파리 부시장은 “소음은 파리 시민의 기대수명을 9개월 단축시킨다”며 “(소음은) 공중 보건의 문제”라고 했다.

교통 소음은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면서 더 심각해졌다. 비대면 사회 여파로 유럽에도 배달 산업이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고릴라스·플링크·카주·게티르 등 ‘10분 배송’을 내세운 초고속 배송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도로 위 오토바이 질주 소음이 더 커진 이유다. 비영리 기관 브뤼파리프에 따르면, 밤중에 파리를 가로지르는 스쿠터 한 대가 최대 1만명의 시민을 깨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서울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파리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유달리 시끄러운 도시라는 오명을 얻었다.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작년 기준 55데시벨(dB) 이상의 도로 교통 소음에 노출된 파리 인구 수는 550만명 이상이다. 영국 런던(260만명)이나 오스트리아 빈(170만명), 이탈리아 로마(170만명) 같은 유럽 내 주요 도시와 비교해도 월등히 많다. 55데시벨은 아파트에서 어른이 뛸 때 발생하는 층간소음 수준으로, WHO(세계보건기구)는 30데시벨만 넘겨도 수면을 방해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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