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은 일자리가 남아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스스로 직장을 떠난 사람이 늘면서다. 지난 3월 미국 기업들의 구인 건수는 전달보다 20만5000건 늘어난 1155만건을 기록했다. 2000년 12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다. 실업률은 떨어졌다. 지난 6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4월 실업률은 3.6%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사실상 완전 고용이라고 판단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딴판이다. 낮은 실업률과 대조적으로 올 들어 미국 S&P500은 21%, 나스닥은 38% 하락했다. 실업률과 주가는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척도다. 그런데 고용과 증시가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노동시장은 뜨겁게 달궈졌는데 주식시장은 차갑게 얼어붙거나,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다. 주가와 실업률이 반대로 움직이는 현상은 특히 경제 위기 전후로 자주 나타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러스트=김영석

◇위기 때 엇갈리는 실업률과 주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사회·경제 전반에 번진 2020년 4월, 미국의 실업률은 14.7%까지 치솟았다. 한 달 동안 일자리 2050만개가 사라졌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달랐다. S&P500 지수는 2580선에서 12% 넘게 오르며 2910선을 넘어섰다. 추세는 이어졌다. 실업률이 5월부터 8월까지 13%→11%→10%→8%로 고공 행진을 했는데, 같은 기간 S&P500 지수도 4.5%→1.8%→5.5%→7.0%로 꾸준히 상승했다. 2000년대 후반 미국 금융 위기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2009년 미국 실업률은 9.6%로 치솟았는데, S&P500 지수는 23%나 올랐다.

시계를 더 뒤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미국 BXK캐피털 등이 1948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실업률과 S&P500 지수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실업률이 9% 이상인 시기에 주가 상승률은 17%로 가장 높았다. 실업률이 7~9% 시기에는 주가가 14% 올랐다. 반면 실업률이 5%~7%였을 때는 주가는 8% 상승했고, 실업률이 5% 이하로 내려와도 주가는 9% 오르는 데 그쳤다. 경제 전문 블로그인 크로싱 월스트리트를 운영하는 에디 엘펜바인이 1948년부터 2012년까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실업률이 6% 이하였을 때 미국 증시의 연간 수익률은 3.19%였는데, 6%가 넘었을 때는 평균 수익률이 14.68%에 달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실업률이 낮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주식 투자자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직후인 1998년 실업률이 7%에 도달했지만, 주가는 50%나 올랐다. 실업률이 6.3%였던 1999년에는 주가가 82%나 뛰었다. 반면 IMF 위기 전 호황기였던 1995년과 1996년 실업률은 각각 2.1%, 2.0%로 낮았지만, 코스피는 오히려 각각 14%, 26%로 떨어졌다.

◇완전 고용이 밀어 올린 임금, 주가 하락 불러

실업률이 완전 고용 수준으로 떨어질 때 주가가 하락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기업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실업률이 너무 낮으면 임금이 오르고,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뜨거운 취업 시장(낮은 실업률)이 월가(주식시장)의 고민”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구인난에 직면한 미국 기업들은 현재 임금 인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50주 가운데 26주가 올해 최저임금을 올릴 예정이고,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일부 임원은 11%라는 임금 인상에도 만족 못 해 회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 연준은 지난달 21일 내놓은 ‘베이지북’에서 “미국의 노동 수요는 여전히 강하지만 인력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미국 주요 기업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낮은 실업률이 불러올 임금 인상이 주가 하락 폭을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임석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아마존이나 테슬라, 애플 등 미국 주요 기업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중에 풀린 돈으로 대부분 자사주를 사들여 몸집을 키웠을 뿐, 기술 개발이나 미래에 대한 투자에는 소홀한 면이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늘면 영업이익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증시는 노동력 부족으로 기업 이윤이 감소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며 “주식시장에 중요한 것과 경제 전반에 중요한 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대로 실업률이 높으면 임금 인상 압박이 덜해 기업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커 증시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코로나19 여파가 계속된 지난해 2월~3월 미국 실업률은 6%를 넘었지만,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자 주가는 7% 올랐다.

주가는 선행 지표인 반면 실업률은 후행 지표 성격을 띠는 것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주식시장은 향후 경제에 대한 기대나 전망에 따라 주로 반응하는 데 반해, 실업률은 이미 일어난 경제 상황을 반영하다 보니 두 수치가 종종 서로 엇갈리는 것이다. 닉 매기울리 리톨츠 자산관리대표는 “실업률이 높아 경제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은 상황이 예견될 경우 증시가 급등하면서 두 지표가 어긋난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5월만 해도 실업률은 13.3%나 됐는데, 당시 모더나 등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S&P500지수는 4.5% 올랐다. 매기울리 대표는 “주식 투자자들은 백신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해 주식을 사들이지만, 백신이 개발된다는 루머를 믿고 직원을 대거 고용하는 고용주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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