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다 ‘실리콘밸리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락한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 창업자.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새빨간 거짓으로 드러나 사기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법정에서 그는 “투자 유치를 위해 과장하는 실리콘밸리의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조선DB

소셜 미디어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 댓글이 활성화되면 대(大)토론의 시대가 열리고 집단 지성과 직접 민주주의가 꽃필 것으로 사람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요즘 목도하는 현실은 극심한 사상과 신념의 양극화다.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슈워드먼, 프리포디, 판 데르 빌레 등 세 연구자가 수행한 실험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무작위로 주제에 대한 찬반으로 나눈 뒤 1시간 동안 토론을 진행하는 국제 토론대회가 있다. 연구자들은 토론 참여자들의 신념과 주제에 대한 자신감,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주제에 찬성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무작위 배정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신념이 강해졌다. 반대 의견에 노출돼도 신념은 유지됐다. 가령 ‘인종차별은 나쁘지 않다’는 주제에서 찬성 변론을 맡았다면, 찬성 논리를 개발하면서 스스로 이를 믿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설득하고 반격에 방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먼저 설득하는 과정을 ‘자기 설득(Self-persuasion)’이라고 한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이런 현상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가령 형편없는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의 마음속에서도 자기 설득이 일어난다. 2007~2008년 금융위기 동안 미국 모기지 채권 판매 부서에서 일한 사람들은 개인 부동산 투자에서 일반인보다도 낮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파는 나쁜 상품(모기지 채권)을 좋은 상품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다 보니 부동산 시장을 오판하게 된 것이다.

될 때까지 되는 척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과 유니콘 기업 대표들이 자기 사업에 대해 종종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기업 대표들은 자신의 사업 모델을 투자자와 소비자들에게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설득이 일어나면서 자신의 사업 모델을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월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스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홈즈에 관한 여러 기록을 보면 그는 여전히 자신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걸로 보인다. 자기 설득이 지나쳐 눈이 멀어 버린 경우다. 자기 설득의 함정에 빠져 있지 않은지 우리 모두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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